[사람들] "외국인 서울살이 도와드려요" 슐레포바 역삼글로벌빌리지센터장

입력 2018-03-30 09:01  

[사람들] "외국인 서울살이 도와드려요" 슐레포바 역삼글로벌빌리지센터장
2015년 10월부터 센터장으로 재임…"서울은 살기 좋은데 집세 너무 비싸"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저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당황하거나 답답해한 적이 많았죠. 그때마다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어디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할지 막막했거든요. 외국인들이 제가 겪었던 어려움을 되풀이하지 않고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는 게 뿌듯합니다."
서울시와 강남구가 운영하는 역삼글로벌빌리지센터의 안나 슐레포바(32) 센터장은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1동문화센터 5층 사무실에서 연합뉴스 인터뷰에 응하며 유창한 한국어로 자신의 역할을 설명했다.
서울시는 2008년 연남·역삼·서래·이태원·이촌 5군데에 글로벌빌리지센터를 설립한 데 이어 2009년과 2014년에 각각 성북과 금천글로벌빌리지센터를 추가했다. 오는 4월 17일은 역삼글로벌빌리지센터가 문을 연 지 10년을 맞는 날이다.
공공서비스나 생활 편의시설에 관한 안내와 상담을 진행하고 의료·법률·부동산 정보를 제공한다. 한국어 교육, 문화체험 프로그램, 봉사 프로그램 등도 운영한다.
"지역별로 거주하는 외국인의 직업이나 계층이 차이가 나고, 계절별로도 원하는 서비스가 달라지죠. 강남구에는 외국어 강사, 대기업 임직원, 전문직 종사자 등이 많이 살아요. 연초가 되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알아보는 분이 많이 몰리죠. 저나 센터 직원이 노무사가 아닌데도 체불임금을 받아 달라는 분도 와요."
역삼글로벌빌리지센터는 한국어 초·중·고급반과 한국어능력시험(TOPIK) 대비반을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 자원봉사자의 재능기부로 비영어권 외국인들에게 영어도 무료로 가르쳐준다. 고궁 답사, 박물관 관람, 국립국악원 견학, 전통문화 체험 등도 마련하고 있다.
"서울은 외국인 여행객들에게 참 매력적인 도시예요. 볼 것도 많고, 대중교통 편리하고, 밤늦게 다녀도 무섭지 않고, 배달도 안 되는 게 없죠. 그런데 외국인 주민들에게는 만만한 곳이 아니에요. 특히 강남구는 집세가 비싸 돈을 웬만큼 많이 벌지 않으면 살기 어렵죠."

슐레포바 센터장은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 씨와 프랑스 출신 방송인 신에바(시나피 에브) 씨에 이어 2015년 10월 취임했다.
키르기스스탄이 고향인 그녀도 KBS 2TV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으며 의류와 액세서리 모델로도 활약했을 만큼 용모와 몸매가 빼어나다.
"키르기스스탄에도 고려인이 많이 살고 성공한 분이 수두룩해 한국에 호감을 느끼긴 했지만 잘 알지는 못했죠. 어른들은 '코리아' 하면 '김정일'을 먼저 떠올릴 정도였거든요. 고등학교에서 한국어, 한국무용, 태권도를 가르쳤는데 한국에서 오신 강사 선생님들을 보고 관심을 품게 됐습니다. 대학도 비슈케크 인문대 한국어과를 선택했죠. '풀하우스', '내 이름은 김삼순', '어린 신부' 등의 한류 드라마와 영화를 대학 수업시간에 처음 봤어요. 비록 제 가정형편은 어렵지만 꼭 한국에 가서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녀는 2007년 교환학생 장학생으로 뽑혀 경기도 용인에 있는 경희대 국제캠퍼스를 다녔다.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할 때는 입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을 잘 모르고 키르기스스탄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자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살아가면서 점점 한국을 이해하게 되고 키르기스스탄과의 차이점도 알게 됐다고 한다.
"생활 습성이나 문화가 다른 게 많지만 가장 힘들었던 게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교수님이나 시부모님께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거나 저와 의견이 달라도 제 생각을 솔직히 털어놓으면 버릇없다는 소리를 듣죠. 또 고향에서는 누가 제게 말하면 눈과 눈을 마주치며 들어줘야 하는데, 여기서는 그러면 사람을 빤히 쳐다본다며 싫어하더군요. 그런 태도 때문에 한국인들이 솔직하지 못하다고 지적받기도 하고 반대로 예의가 바르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키르기스스탄 자랑을 해 달라"고 하자 "비슈케크 공항에 내리면 공기가 맑아 숨 쉬는 것부터가 다르다"며 깨끗한 자연을 내세웠다. 이어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나라 출신답게 "한국의 산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톈산산맥과 키르기스산맥의 산들에 비하면 언덕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슐레포바 센터장은 2009년 학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가 교환학생 시절 우연히 만나 사귄 한국인 남자와 결혼해 2010년 한국에 돌아왔다. 시아버지의 권유로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학과에 진학해 2015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공부하는 동안 모델 일과 통번역 등으로 생활비도 벌어가며 홍태민(8)·태윤(6)·태안(3) 3형제를 낳았다. 태민은 초등학교 2학년인데 시어머니가 학교에도 찾아가며 학부모 역할을 대신해준다고 한다.
"아이들의 용모가 한국인과 달라 친구들에게 놀림당한 적은 없느냐"고 묻자 "잘생겼다고 학교에 소문이 나서 상급생 누나들까지 태민이를 보러 교실에 온다고 들었다"면서 "인기가 있는 건 좋은 일이지만 아들이 교만해질까 봐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중앙아시아 출신이지만 제가 백인이니까 동남아 출신이나 흑인보다 차별을 덜 받는 건 사실이에요. 아이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저도 영어권 국가 출신이 아니어서 설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대학 다닐 때도 전 한국어를 빨리 배우고 싶은데 한국 학생들은 자꾸 영어로만 대화하려고 하고 영어권 출신 친구들을 더 사귀고 싶어 하죠.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피부 빛깔이나 소득 수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hee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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