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다문화 결손가정 자녀 돌보는 강영신 온두라스 한인회장

입력 2018-03-30 15:24   수정 2018-03-31 10:47

[사람들] 다문화 결손가정 자녀 돌보는 강영신 온두라스 한인회장
"한국인 아빠에 버려진 아이들 100여 명…다문화센터 건립 시급"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다문화 결손가정 자녀들은 한국인 아빠가 엄마와 자기를 버렸다고 원망합니다. 한인회·한글학교에서 이들을 돕고 있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이들을 전문적으로 돌볼 다문화센터 건립이 시급합니다."
재외동포재단이 4월 초 주최하는 '세계한인회장대회 운영위원회' 참석차 방한한 강영신(65) 온두라스 한인회장은 3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봉제업에 종사하는 한인이 현지인과 결혼했다가 혼자 귀국하면서 남겨진 자녀들이 방치돼 있다"며 "100여 명에 이르는 이들이 '라이따이한'(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인과 베트남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이나 '코피노'(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자녀)처럼 양국 관계의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면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남미 국가로 과테말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온두라스는 저렴한 인건비로 인해 봉제업에 종사하는 한인들이 많다. 한때 800여 명에 달했으나 인건비 상승으로 현재는 3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결손가정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 강 회장은 "대부분 한국에 이미 가정이 있는 남자들이 현지처를 얻어 살다 보니 귀국을 하거나 다른 나라로 떠날 때 데려가지 않는 것"이라며 "자녀들 이름은 한국식으로 지어주고서는 끝까지 돌보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 자녀가 한국으로 아빠를 수소문해도 연락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최근에는 정식으로 결혼하는 다문화 가정이 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이들의 불우한 처지를 돕는 데 앞장서게 된 것은 한국인 아빠와 현지인 엄마 양쪽으로부터 버림받은 딱한 사정의 아이를 돌보게 되면서다.
7살 때 한국인 아빠가 혼자 귀국하고 엄마는 현지인과 재혼해 낳은 아이만 데리고 미국으로 밀입국해 혼자 남겨진 아이를 외할머니가 강 회장에게 맡겼다. 안쓰러운 마음에 맡아 키우게 되면서 의외로 주변에 결손가정 자녀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한국인으로서 도의적 책임에서라도 도와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강 회장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후반 사이에 이런 가정이 많이 생겨났고 여기서 태어난 자녀들은 대부분 10대에서 20대 초반에 이른다.
1994년에 한글학교를 세운 이래로 교장으로도 봉사 중인 그는 결손가정 자녀와 엄마가 한국과의 연결고리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한글학교에 다문화 초등반과 성인반을 개설했다. 한국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이들에게는 학비를 받지 않는다.
4년 전 한인회장에 당선되면서 제일 먼저 추진한 사업도 '다문화 결손가정 자녀 장학사업'이다. 매년 20명의 아이에게 월 25달러씩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강 회장은 "국공립학교는 무상교육임에도 형편상 돈 버는 게 우선이라고 아이들을 공장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며 "제대로 교육을 받게 하려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에게만 장학금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3년 전부터는 한인 차세대와 결손가정 자녀들이 교류하는 '다문화 차세대 모임'도 운영하고 있다. 한식을 만들어 먹거나 전통예절과 놀이 등을 함께하며 다문화 자녀들이 한국을 알도록 돕는 모임이다.
강 회장의 바람은 버려진 엄마가 자녀를 잘 키울 수 있도록 직업교육도 하고 자녀들에게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심어주는 교육을 펼치면서 서로 돕고 살 수 있도록 중심이 되는 '다문화센터'를 세우는 일이다.
이를 위해 현재 셋방살이 하는 한인회관을 제대로 지어서 다문화센터와 한글학교도 입주시키는 한인종합회관을 짓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강 회장은 온두라스 육군사관학교 교수로 초빙된 남편 송봉경(2008년 작고) 씨를 따라 1977년에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로 이주했다. 송 씨는 '송봉경종합체육관'을 설립해 온두라스에 처음으로 태권도를 보급했다. 1만여 명을 넘은 그의 제자 중에는 2011년 대통령에 당선된 포르피리오 로보 로사 대통령도 있다.
송 씨 사후에도 강 씨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던 로보 대통령은 2011년 그를 한국 대사로 지명했으나 곧 철회했다. '귀화한 외국인은 원적 국가에서 온두라스를 대표해 공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국내법 규정에 저촉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대신 당시 스페인인 공사였던 그의 현지인 사위를 한국대사로 발령내며 남다른 친분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결손가정 자녀 중 최근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이 나오고 있다며 한국 정부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한두 명이라도 장학생으로 초청해주기를 희망했다.
강 회장은 "아빠 나라에서 공부를 더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많다. 한국인의 피가 흘러서인지 똑똑하고 공부도 잘한다"며 "재외동포재단의 청소년·대학생 초청연수나 모국 초청 장학생 선발시 이들을 배려해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wakaru@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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