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보다 큰 유혹 없었다…미국 연수 후 MBC서 다시 인사"
"유재석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프로그램…그도 공허할까 걱정"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휴식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였죠. 늘 그게 고민이었습니다."
오는 31일로 13년간의 항해를 멈추는 MBC TV 간판 예능 '무한도전'의 선장 김태호 PD는 이렇게 말했다.
3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김 PD는 마지막답게 특유의 노란 머리와 어울리는 베이지색 수트로 한껏 멋을 내고 등장했다. 그는 1시간 30분에 걸쳐 소회를 쏟아냈다.
김 PD는 "'무한도전'을 하면서 제일 먼저 생각하려 했던 것은 돈, 명예보다 프로그램의 색깔을 지키는 것이었다"며 "하지만 '무한도전'의 색깔이 제 색깔이었던 상황에서 점점 자괴감이 왔다. 그것을 회복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또 "돌아온다는 얘기를 자신 있게 하면 좋겠지만 아직 머릿속에 어떤 구상도 없다"면서 "다만 돌아온다면 전체 스토리는 유지하되 후배 PD들과 나눠 하는 '마블' 같은 시스템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적설에 대해서는 "'무한도전'만큼 사랑하고 더 큰 유혹을 느낀 것은 없었다. 이 자리(MBC)에서 다시 인사드릴 것"이라고 부인했다. 그는 간담회 후 기자들과의 대화에서는 "회사의 배려로 누나가 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3개월가량 연수를 다녀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김 PD와의 일문일답.
-- 프로그램 종영 소감은.
▲ 처음에는 방송화법에 부적합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2008년에는 국내에서 가장 큰 버라이어티가 됐다. 지켜야 할 룰들이 생기면서 2010년부터는 변화를 고민했다. 전통과 신선함을 병행하기 쉽지 않았다. 이번 인사도 쉬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무한도전'을 더 좋게 만들지에 대한 결론이다. 제작진과 유재석 씨가 올해 봄쯤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자고 얘기했다. 13년간 멤버들과 함께하다 보니 가족처럼 알고 있는 정보가 많아 초반보다 예상외의 모습을 볼 기회도 줄었다. '1등 예능'도 좋지만 매년 특별한 방송이 되고 싶었다.
-- 종영에 대한 멤버들 반응은.
▲ 저는 안 울었는데 멤버들이 눈물을 많이 흘렸다. 멤버들에게는 목요일마다 MBC로 출근하는 게 하루 세끼처럼 습관이 됐다. 멤버들이 농담처럼 '다음주에 서로 MBC 주변에서 돌다가 마주치지 말자'고 하더라. 아직 실감을 못하는 것 같다. 서서히 받아들여야 한다. 오래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 멤버들 간 '예능관'이 조금씩 달랐다. 관찰 예능들이 유행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헤쳐나갈지도 고민이었다. 그에 대한 답을 찾으면 돌아올 것이다.
-- 언제 '무한도전' 시즌2를 볼 수 있나.
▲ 당장 6개월 후에 시즌2로 돌아오겠다고 할 수 있었다면 멈출 이유도 없었다. '무한도전'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구체적으로 그리기 힘들다. 13년간 저녁에 집에서 아내, 아들과 밥을 먹은 적이 별로 없다. 일단 가정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들 한글 공부도 시켜야 한다. (웃음) '이거 할 만하다'는 게 생기면 다시 이 자리에서 인사드리겠다.
-- MBC에 계속 있겠다는 뜻인가.
▲ 그렇다. 전 다른 회사 관계자나 타사에 간 후배들 얘기를 들으며 오히려 그 회사들의 좋은 부분을 우리 회사로 옮겨올 수 없을까 생각한다. 제게 아직 '무한도전'보다 더 큰 유혹은 없다. 현대카드, YG엔터테인먼트로 간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제가 거길 가서 뭘 하겠나. 빅뱅 자리? (웃음) 다음주부터는 부장이 아닌 일반 PD로서 개발팀으로 출근한다. 제가 평소에 여러 플랫폼 관계자들을 만나고 다니다 보니 이적설도 나온 것 같다.
-- 그동안 '무한도전'에 참여했던 멤버들에 대해.
▲ 유재석이 없었다면 '무한도전'은 없었다. 가장 많이 대화했다. '자신 있게 해보자, 안되면 말고'에 공감해준 것도 재석 씨다. 그와 사이가 틀어졌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재석 씨가 다음주부터 상당히 공허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박명수 씨는 끝까지 할 거라고 생각 못했다.(웃음) 본인의 색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같이 와주셔서 감사드린다. (예능감에) 기복이 심한 분인데 저희가 활용을 잘 못해서 죄송하기도 하다. (정)형돈이도 그렇다. 용기 내서 종방연에 와줬는데, 그가 가진 아픔을 좀 더 일찍 챙길 걸 그랬단 생각이 들었다. 하하 씨는 축구로 치면 미드필더로, 공에 비해 성과가 적어 아쉬운 마음이다. 노홍철 씨도 '무한도전'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더라. 양세형 씨는 마음 아픈 멤버 중 하나다. 처음부터 너무 잘해서, 저희가 필요해 초대한 인물인데 드러내놓고 우리 멤버라 얘길 못했다. 조세호 씨는 2009년부터 인연을 맺었다. 사실 지난해 노홍철 씨를 어떻게 다시 들어오게 할까 고민을 했는데 그게 힘든 걸 서로 깨닫고 세호 씨를 생각했다. 본인은 칭찬만 받다 멈춰서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하더라. (웃음)
-- 스페셜 방송엔 전 멤버가 참여하나. 왜 마지막회가 '보고싶다 친구야'인가.
▲ 코멘터리 특집은 현재 멤버 6명이 기억에 남는 순간을 말하는 인터뷰 형식이다. '보고싶다 친구야'는 앞으로 보고 싶다는 의미도 있고 중의적인 표현이라 좋았다. 또 열린 결말이 '무한도전'답지 않나.
-- 연출자로서 '무한도전'을 통해 배운 점.
▲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을 합친 것보다 긴 시간이니 정말 오래 하긴 했다. (웃음) '무한도전'에는 100명 가까운 스태프가 항상 함께한다. 뭐든지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을 많이 배웠다. 항상 제 의견이 정답일 수 없단 것도 깨달았다. 전 스태프가 4월에 3박4일 괌으로 포상휴가를 간다. 멤버들은 그 이후로 준비 중이다. 개인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젊은 PD가 2년 마다 돌아가면서 해도 좋을 것 같다. '무한도전 김태호'란 꼬리표가 앞으로도 오래 달릴 것을 안다. 자부심도 있지만 아쉬움도 있다.
-- 후배들이 돌아가면서 한다는 것의 의미는.
▲ 마블의 10주년을 보면서 많은 점을 느꼈다. 전체적인 세계관은 가져가되 특집은 각각 다른 감독이 만들지 않나. 제가 전체적인 틀은 가져가되 현장에서 구체화하는 역할은 후배들이 했으면 좋겠다. 다만 세계관을 공유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무한도전'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마블' 같은 시스템이 되지 않을까 싶다.
-- 기억에 남는 특집과 아쉬운 부분.
▲ 처음에는 2%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서 도전하는 데 의미를 뒀다면 이듬해부터 2009년까지는 캐릭터가 생성되면서 촘촘하게 재밌는 게 많았다. 2010년부터는 고통이 많았다. 그때부터 사회적인 화두를 던지려 노력했다. 역사 문제, 선거 제도, 대체 에너지, 법안 발의 같은 것들. 계몽주의적이라 비판한 분도 있지만 1년에 한두번은 의미를 주고 싶었다. 일본 우토로 마을에 다녀왔을 때 등 호평받은 후에는 '이 방송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만큼 다음주 방송을 준비하는 게 두려웠다. 그 공허함과 두려움이 싫어서 영동고속도로 가요제를 할 때는 배달의 무도 특집과 함께 준비했는데, 끝내고 나니 고통이 2배였다. (웃음) 이밖에 '여섯개의 시선'은 기술의 부족으로 '망작'(망한 작품)이 됐고, '좀비' 특집도 디테일이 아쉬웠다. 미국 뉴욕에서 진행한 '식객', '면접의 신', '컬링' 특집 등도 준비는 많이 했는데 '무한도전'의 틀 안에서 한 번에 다 방송하다 보니 많이 보여주지 못했다.
-- 최근에는 관찰 예능이 대세다. 관심 있나.
▲ 한동안은 이 추세가 지속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이기도 하다. '리얼'이 때로는 고민해서 만들어내는 것보다 훨씬 강한 힘을 준다.
-- '라이벌'인 CJ E&M의 나영석 PD를 보며 드는 생각.
▲ 워낙 본인이 자신의 색을 잘 살려서 잘하고 있지 않나. 인센티브를 얼마나 많이 받나 궁금하다.(웃음) 우리 후배들도 잘한 만큼 대우받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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