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아이도 편견없이 자라요"…진땀 뺀 보조교사 체험기

입력 2018-04-01 12:00  

"장애 아이도 편견없이 자라요"…진땀 뺀 보조교사 체험기
마포 어린이집 장애통합반서 일일 체험…"배려를 배우는 아이들"
장애아 3명에 전담교사 1명 '태부족'…세심한 지원 필요성 절감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기저귀 차고 젖병을 빠는 아기부터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아이까지 150명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어린이집에 발을 들이며 긴장되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켰다.



기자가 지난달 28일 오전 어린이집 보조교사 체험을 위해 찾은 곳은 서울 마포구의 신석어린이집 해바라기반. 장애아 3명을 포함해 19명의 아이가 함께 생활하는 통합반이다.
6살(만 4세) 아이들은 낯선 어른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맞아줬다. 담임교사인 정지숙 선생님의 소개에 인사를 나누고 잠시 함께 놀다 돌아서자 뒤에서 "한미희 선생니임~"을 목청껏 불러댔다.
학교처럼 정해진 시간 없이 들쭉날쭉한 아이들의 등원은 10시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뇌병변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영(가명)이도 등원해 인사를 나눴다.
잠시 특수 제작된 의자에 앉아있던 아영이는 놀이 시간이 시작되자 좋아하는 요리 도구들이 있는 바닥으로 내려와 앉았다.
허리를 가누지 못해 엎드려 노는 아영이 곁으로 다가온 다른 아이들은 아영이에게 원하는 장난감을 묻고 좋아하는 도구들을 꺼내다 주거나, 아영이의 손을 잡고 볼을 쓰다듬기도 했다.
다 같이 모여 앉을 때는 아영이 옆자리를 지키는 친구도 있었다.
정 교사는 "아이들은 대부분 지난해부터 같은 반에서 생활해서 (장애가 있는 친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며 "물론 조금 경계하는 아이들도 있고, 선생님의 칭찬을 받으려고 더 다가가 도와주는 아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아영이가 다정한 친구들의 관심을 받긴 하지만 아영이와 다른 두 명의 아이들을 씻기고 대소변을 보게 하고 재우고 먹이고 돌보는 것은 전담교사인 윤기민 선생님의 몫이다.
몸이 불편한 아영이는 항상 안아서 이동하고, 넘치는 에너지로 쉬지 않고 뛰어다니는 수형(가명)이는 계속 옆에 붙어있어야 하고, 감정 조절이 어렵고 과잉행동을 보이는 명진(가명)이도 계속 달래줘야 한다.
윤 교사의 모자란 몸이 되어 수형이를 잡으러 다니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영이를 안아주고 짬짬이 다른 10여 명의 아이를 상대하는 일은 턱없이 어설펐다. 땀이 줄줄 흐르고 정신은 혼미해져 갔다.
윤 교사 역시 아침부터 흐르는 땀을 닦을 새도, 물 한 모금 마실 시간도 없었지만, 아이들을 향한 다정한 목소리는 변함이 없었다.



윤 교사가 강당에서 단체 체육 활동을 지도하는 동안 잠시 아영이를 맡았다. 윤 교사는 3명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신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배려했다.
윤 교사의 지도에 기꺼이 부응하기 위해 아이들이 뛰어다닐 때 아영이를 안고 뛰려니 금세 팔에 힘이 빠지고 숨이 차고 허리가 아파왔다. 아이들의 키에 맞춰 무릎걸음으로 움직이다가 멍이 들기도 했다.
아이들이 둥그렇게 서서 색색의 커다란 천을 붙잡고 흔들면 몇 명은 그 아래 누웠다. 다른 아이들보다 몇 번 더 누울 기회를 얻은 아영이는 펄럭이는 천을 보며 꺄르르 웃었다.
천 아래 눕고 싶은데 기회를 얻지 못한 아이들이 서운해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그 목소리를 놓치지 않은 정 교사는 체육 활동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와 아이들을 앉혀 놓고 "아영이는 너희가 하는 다른 활동을 다 할 수 없으니까 할 수 있는 활동에서 기회를 더 주는 것"이라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관용구가 온몸으로 절실하게 느껴졌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장애아 3명을 1명의 교사가 전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정부에서 인건비를 지원하지 않아 어린이집에서 자체 고용한 도우미 교사 1명이 두 개 반을 왔다갔다하며 윤 교사를 돕지만 역부족이다.
20명에 가까운 아이들의 식사와 간식을 준비하고 정리하고, 양치한 칫솔을 다시 헹궈 소독하고, 대소변 실수를 뒤처리하고, 교실 뒷정리와 청소까지 일은 끝이 없고 손은 모자랐다.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고 기분이나 몸 상태가 제각각인 16명의 아이를 혼자 맡은 담임교사 역시 버겁긴 마찬가지다.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을 줄 알았던 낮잠 시간에도 쉽게 잠들지 않는 아이들을 다독이고 알림장을 작성했다.



규모가 큰 국공립 시설이라 그나마 나은 상황인데도 보육 경험이 전무한 초보 보조교사는 혼이 빠지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유아 때부터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통합반에서 장애 아이들은 사회성을 기르고, 비장애 아이들은 배려를 배우며 편견 없이 자라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문제는 턱없이 부족한 교사. 자격증이 있는 특수교사 자체가 적은 데다, 학교나 병원 등 다른 선택지가 많으니 노동 강도가 세고 임금이 낮은 어린이집은 인기가 없다.
낮잠 시간에야 잠시 숨을 돌린 윤 교사는 "통합반에서 함께 지내던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서로 돌보고 챙겨준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며 "장애아 3명 당 전담교사 1명이라는 딱딱한 규정보다는 아이들 각각의 특성에 맞는 세심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mih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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