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리비아' 사이…文대통령 해법은 '북한식 단계적 접근'

입력 2018-03-31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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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리비아' 사이…文대통령 해법은 '북한식 단계적 접근'
문 대통령 '베를린 구상'서 북핵의 '단계적·포괄적 접근' 천명
北 '이란식' 단계적 해법…美 '리비아식' 선폐기-후보상 염두 둔듯
靑관계자 "이란과 리비아 사이 어딘가에서 '북한식' 해법 나올 듯"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한반도의 명운을 가를 남북·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고르디우스의 매듭 자르기', '리비아식 해법', '이란식 해법', '몰타 회담 방식' 등 갖가지 북핵 해법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연합군사훈련이 동시에 중단돼야 한다는 '쌍중단'과 함께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체제 협상을 병행 추진하는 것을 의미하는 '쌍궤병행'을 예전부터 주장해 왔다. 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 26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만난 자리에서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이고 동시적 조치'를 언급하며 사실상 '행동 대 행동'에 입각한 '단계적 해법'을 제시했다.
이처럼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해법들이 거론되고 있으나, 우리 정부의 북핵 해법은 '단계적·포괄적 접근'이라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베를린 구상'을 통해 밝힌 것으로, 당시 문 대통령은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하겠다"며 "단계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천명했다.
통일부가 작성한 '문재인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책자에 따르면 여기서 '단계적'은 관련국과 긴밀한 공조를 유지하면서 핵 동결에서 시작해 단계적으로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를 추진한다는 의미다.
이는 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미국행(行) 대통령 전용기에서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핵 동결은 비핵화 대화의 입구이고, 대화의 출구는 완전한 핵 폐기"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 '포괄적'은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남북 간 정치·군사적 신뢰 구축,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북한과 국제사회와의 관계 개선 등을 함께 협의해 안보위협을 근원적으로 해소해 나가겠다는 의미라고 통일부는 정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3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최근 우리 정부의 북핵 해법을 두고 다양한 관측이 제기됐지만, '베를린 구상' 발표 이후 우리 정부의 대북 기조는 '단계적·포괄적 접근'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인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단계적 접근'은 비핵화 단계에 맞춰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는 '이란식 해법'을 연상케 한다.
이란의 비핵화를 위해 5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과 독일이 2015년 7월 이란과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핵 동결·불능화·폐기 등 비핵화 단계별로 제재를 축소해 가는 방식이다.
이는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입각해 단계적 방식으로 합의의 이행을 위해 상호 조율된 조치를 취한다'고 명시한 2005년 9·19 합의와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북핵 문제의 실질적 당사자 중 하나인 미국이 '이란식 해법'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핵 합의를 오바마 정부 '최악의 외교'라고 맹비난하면서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아직 트럼프 대통령이 구체적인 북핵 해법을 제시한 적은 없으나, 그간의 언행을 통해 유추해 보면 '이란식 해법'의 대척점에 있다고 평가되는 '리비아식 해법'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선(先) 핵 폐기, 후(後) 보상'으로 불리는 리비아식 해법은 먼저 핵 프로그램과 대량파괴무기(WMD)를 폐기한 후 제재를 해제하는 것을 뜻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방한 당시 우리 국회연설에서 "우리는 빛과 번영과 평화의 미래를 원하지만, 이 같은 밝은 길을 논의할 준비가 된 경우는 북한 지도자들이 도발을 멈추고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경우"라고 단언했다.
이는 '밝은 길' 즉, 보상을 논의하기에 앞서 북한의 핵 폐기가 우선돼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리비아식 해법'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북한이 '리비아식 해법'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핵을 포기한 이후 미국·영국·프랑스 등의 지원을 받은 반군에 의해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당시 북한은 "'리비아 핵 포기 방식'이란 바로 '안전담보'와 '관계 개선'이라는 사탕발림으로 상대를 얼려 넘겨 무장해제를 성사시킨 다음 군사적으로 덮치는 침략방식이라는 것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이 북중정상회담에서 밝혔듯이 이란식 단계적 비핵화를 선호할 뿐 아니라 최대한 비핵화 단계를 잘게 쪼개서 합의하고 이행에 따른 보상을 받는 '살라미식 해법'을 바란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처럼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 방법을 두고 대척점에 서 있는 상황이지만, 청와대는 정반대의 방법론처럼 보이는 '이란식'과 '리비아식' 사이에도 어느 정도의 접점이 존재한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사실 '선(先) 핵폐기, 후(後) 보상'으로 도식화돼 있는 '리비아식 해법'도 자세히 뜯어보면 몇 단계를 거쳐 진행됐다.
리비아는 2004년 1월 1단계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에 가입했으며, 2단계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허용했고 핵·미사일 장비를 폐기했다.
이에 미국은 2004년 4월 경제 제재를 해제하고, 같은 해 6월 리비아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해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그러자 리비아는 3단계로 대량파괴무기를 완전히 폐기했고, 미국은 2005년 10월 리비아 핵 프로그램의 중단을 발표한 후 2006년 5월 연락사무소를 대사관으로 승격하고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리비아의 비핵화도 한 번에 핵 폐기가 이뤄지고, 완전히 제재를 푼 것은 아니었다"며 "결국, 이란과 리비아 사이의 어딘가에서 '북한식 해법'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물론 '북한식 해법'을 도출해 내는 과정에서 전체 비핵화 과정을 몇 단계로 나눌지, 또 첫 단계에서 얼마나 진도를 나갈지, 반대급부로 어떤 보상이 이어질지 등을 두고 북한과 미국은 치열한 협상을 벌일 것으로 관측된다.
아울러 우리 정부 역시 한반도 비핵화라는 '옥동자'를 보기 위해 산파 역에 최선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kind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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