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 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창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해 "미국의 핵무기가 필요하다"고 딴지를 걸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 2009년 2월 이케바 다케오(秋葉剛男) 당시 주미 일본대사관 공사(현 외무성 사무차관) 등이 '미국의 전략태세에 관한 미 의회 자문위원회'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발언 내용을 공개했다고 1일 보도했다.
이 미국 의회 자문위원회는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이 좌장을 맡은 곳이다.
일본 측 인사들은 당시 회합에서 궁극적인 목표로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지지한다면서도 미국이 일본을 지키는 '확대억지'는 계속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본을 둘러싼 안보환경은 미국의 핵을 포함한 억지력을 필요로 한다"면서 "러시아와 핵무기 감축을 논의할 때 중국의 핵확장에 항상 유의해야 한다. 사전에 일본과 상담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들은 "미국이 실전 배치한 전략핵의 일방적인 감축은 일본의 안전보장에 역효과를 줄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유일한 전쟁 피폭국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일본이 핵 군축이 아닌 핵억지 유지를 주장한 것과 관련해 당시 미국 의회와 정부에서 의외라는 반응이 퍼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에서 핵 없는 세상을 주제로 연설한 다음 전 세계 정상들을 초청한 가운데 핵안보 정상회의를 추진하는 등 집권 내내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창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일본은 핵무기 폐기 촉구 결의안을 매년 유엔에 제출하면서도 정작 작년 유엔총회를 통과한 핵무기금지협약에는 동참하지 않는 이중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런 이중성을 가진 일본의 피폭지 히로시마(廣島)를 지난 2016년 8월 방문해 "핵무기 없는 세상을 추구할 용기를 지녀야 한다"고 연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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