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회복과 독재 우려 해소가 과제
(카이로=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압델 파타 엘시시(64) 이집트 대통령이 97%의 득표율로 가볍게 재선에 성공했지만, 뒷맛은 개운하지 않다.
지난달 26∼28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선거의 공정성 논란이 거세게 일었고 투표율도 저조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대선은 2011년 시민혁명 이후 가장 비민주적인 평가가 나왔다.
선거를 앞두고 잠재적인 대선 주자들이 잇따라 낙마하면서 사실상 경쟁자가 없는 선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올해 1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사미 아난 전 육군참모총장이 군대의 허가없이 출마를 선언했다는 등의 이유로 군 당국에 체포됐다.
같은 달 유력한 대선 주자로 꼽혔던 아흐메드 샤피크 전 총리는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샤피크 전 총리는 11월 말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12월 귀국한 뒤 행방불명 소동을 거쳤고 정부에 의해 불출마 압력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앞서 작년 11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인권변호사 칼레드 알리는 '풍기 문란' 혐의로 3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올해 불출마로 입장을 바꿨다.
대선 후보들이 줄줄이 석연찮은 이유로 퇴출당하면서 결국 엘시시 대통령과 무사 무스타파 무사(66) '가드당' 대표 등 2명만 출마했다.
무스타파 대표는 이집트 국민 사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정치인이다.
특히 선거 출마 전까지 엘시시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들러리 후보라는 게 중론이다.
이 때문에 개혁개발당을 비롯한 이집트 내 8개 야당과 야권 인사 약 150명은 지난 1월 말 선거가 공정하지 못하다며 유권자들에게도 투표에 참여하지 말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엘시시 대통령의 당선이 확실한 '뻔한 선거'이다 보니 흥행에 성공할 수 없었다.
엘시시 대통령과 이집트 정부는 국민에게 투표 참여를 독려했지만, 최종 투표율은 41%에 그쳤다.
시민혁명 이후 3차례 치러진 대선에서 가장 낮은 투표율이다.
2012년 대선 결선에서는 투표율이 50%를 넘었고 4년 전인 2014년 대선 투표율은 47.5%였다.
이집트 정부는 올해 투표하지 않는 유권자에게 500이집션파운드(약 3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경고했지만, 투표를 포기한 이들이 절반을 훨씬 넘은 것이다.
아울러 이집트 정부가 투표율을 높이려고 금품과 협박 등의 갖가지 수단을 동원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투표율이 낮은 것은 민심 악화를 반영하고 있다.
노인들은 투표소를 많이 찾았지만, 젊은층은 투표에 관심이 적었다는 게 현지 언론과 외신의 공통된 지적이다.
젊은이들이 물가 급등과 높은 실업률, 민주화 악화 등으로 절망하고 정권에 불만을 많이 것으로 평가된다.
이집트 매체 이집트인디펜던트는 2일 젊은이들에게 투표에 불참한 이유를 물어본 결과, 바쁜 일과 정치 상황에 대한 불만, 선거 절차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 등 3가지로 요약된다고 분석했다.
청년층은 2011년 시민혁명을 주도했으며 기득권층인 군부 세력에 대한 반감이 상대적으로 크다.
특히 엘시시 대통령은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무슬림형제단 등 1천명 넘게 사망한 사태는 큰 약점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엘시시 정권은 앞으로 시민혁명 이후 악화한 경제를 회복하고 권위적 이미지를 완화함으로써 젊은층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할 숙제를 안았다.
이집트 국민 사이에서 엘시시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기대는 엇갈린다.
엘시시 대통령이 도로 건설 등 전시성 사업에 집중하고 권위주의적 통치를 이어온 만큼 '집권 2기'에도 정책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반면, 어떤 이들은 지난 4년간 사회 불안정과 경제 침체는 시민혁명의 후폭풍이기 때문에 엘시시 대통령의 책임으로 돌리기 어렵다고 말한다.
카이로 시민 아흐마드(40)는 "엘시시 대통령이 4년 전 취임했을 때 테러 등 많은 사회적 문제가 있었던 만큼 기회를 더 주는 것이 맞는다"며 "앞으로 엘시시 대통령이 나은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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