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세력확장 막으려는 러-후견세력 찾는 탈레반 내통"
탈레반 야간투시경·중화기 무장…결국 미국·나토에 위협될 듯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 반군인 탈레반 조직에 각종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을 놓고 국제사회가 날카로운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이 같은 의혹을 토대로 러시아를 몰아붙이고 있고, 러시아와 탈레반은 "증거가 있느냐"며 펄쩍 뛰고 있다.
만약 러시아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탈레반에 무기를 지원한 게 사실로 드러날 경우 최근 '이중스파이 암살 시도'로 껄끄러워진 서방과 러시아의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러시아의 탈레반 무기지원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관계자 인터뷰와 주장의 배경 등을 담은 분석 기사를 2일(현지시간) 내보냈다.
러시아의 탈레반 무기지원 의혹은 존 니컬슨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이 최근 BBC와의 독점 인터뷰에서 집중적으로 거론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미 수년 전부터 미국 관료들이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해온 데 이어 니컬슨 사령관이 구체적인 정황까지 제시하자 관련 논란은 더욱 확산되는 분위기다.
니컬슨 사령관은 러시아의 무기류가 타지키스탄 국경을 거쳐 탈레반으로 흘러들어 갔다고 주장했다.
아프간은 17년째 정부와 내전 중인 탈레반과 최근 세력을 키우고 있는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경쟁적으로 테러에 나서면서 치안이 극도로 악화하고 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의 공격으로 아프간 정권에서 축출된 탈레반과 2015년 'IS 호라산 지부'를 만들어 아프간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IS는 자신들의 세력 확대와 존재감 과시를 위해 과격한 테러와 정부군 대상 공격을 잇달아 벌이고 있다.
니컬슨 사령관은 러시아가 아프간에서 활동 중인 IS의 수를 크게 부풀려 이야기하면서 이들과 경쟁하는 탈레반의 활동을 정당화하고 일정 부분 무기 지원까지 했다고 말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도 지난해 10월 탈레반이 러시아에서 무기를 받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BBC는 아프간 군당국 관계자 등의 말을 인용해 이들 무기에는 야간 투시경(NVG), 중기관총, 소화기류 등이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와 탈레반은 "니컬슨 사령관의 주장에는 증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아프간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BBC에 "그런 주장은 근거가 없는 가십일 뿐"이라고 발끈했다. 탈레반 대변인도 "우리는 어느 나라로부터도 무기지원을 받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1980년대 소련의 아프간 침공 이후 줄곧 적대 관계였던 러시아와 탈레반이 최근 들어 가까워지고 있다는 분위기는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고 BBC는 설명했다.
특히 9·11 테러 후 탈레반이 러시아와 본격적으로 협력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도 탈레반을 안보에 위협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 '무시할 수 없는 현실'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무기지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양측 사이에는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채널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BBC는 러시아와 탈레반이 이처럼 '소통'하는 데는 3가지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첫째, 러시아는 탈레반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통해 현지 자국민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BBC는 분석했다.
또 러시아로서는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아프간에서 급성장하는 IS를 견제하려면 '탈레반 카드'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IS와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는 탈레반이 "우리는 IS와 달리 아프간 이외 지역에서는 무장 투쟁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점도 러시아를 안심시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셋째 이유는 러시아가 아프간 문제는 군사력이 아닌 정치적 해법으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탈레반을 평화 회담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BBC는 하지만 러시아와 탈레반의 관계 강화는 결국 미국과 나토에 압박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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