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시민권에 5년치 식량도 제공…"정치적 의도인듯"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이슬람계 로힝야족을 국경 밖으로 몰아내 '인종 청소' 논란을 촉발한 미얀마가 로힝야족이 살던 마을에 이웃 국가 방글라데시의 불교도를 불러들이고 있다.
3일 AFP 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얀마 당국은 최근 국경을 맞댄 방글라데시 산구 지역에 거주하는 50여 가구의 불교도들에게 토지와 시민권 그리고 5년 치 식량을 제공하면서 라카인주 이주를 제안했다.
이에 따라 50여 불교도 가구 중 22가구가 지난달 고향 마을을 떠나 미얀마로 향했다.
현지 지역 의회 의원인 무잉 스위 트위는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대부분 불교도이며 일부 기독교도들이다. 미얀마는 이들에게 토지를 공짜로 제공하는 한편, 시민권과 5년 치 식량을 주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극심한 빈곤상태로 살아온 이들은 미얀마를 떠난 로힝야족이 버린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복수의 방글라데시 정부 관리들도 이런 움직임이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지역 행정관인 자한기르 알람은 "그들은 공짜 집과 5∼7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음식 등을 동원한 미얀마인들의 유혹에 넘어갔다. 일부 가구는 이미 미얀마로 이주했다"며 "이미 미얀마로 건너간 사람들을 동원해 그 친척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들(이주한 사람들)은 미얀마 사람들과 종교적 언어적으로 유사하다. 그들은 조상들은 과거 미얀마에 정착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관리는 이런 미얀마 당국의 조처에 정치적 배경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관리는 "미얀마는 이주자들을 이용해 이를테면 '방글라데시에서 고문과 핍박을 받던 불교도들이 미얀마로 이주했다'는 식의 뉴스거리를 만들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은 여러 세대에 걸쳐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 자리를 잡고 살았지만, 정식 국민 대접을 받지 못한 채 차별과 박해를 받았다.
로힝야족 반군인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은 동족을 보호하겠다며 대미얀마 항전을 선포하고 지난 2016년 10월과 지난해 8월 미얀마 경찰 초소를 습격했다.
미얀마 정부와 군은 ARSA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대대적인 소탕작전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이른바 '인종 청소' 논란이 빚어졌다.
유혈충돌을 피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도피한 70만 명에 이르는 로힝야족 난민은, 미얀마군과 불교도들이 양민을 학살하고 방화, 성폭행, 고문을 자행하며 자신들을 국경 밖으로 몰아냈다고 주장했다.
유엔과 국제사회는 이런 난민들의 주장을 근거로 미얀마군이 '인종 청소' 또는 '제노사이드'(집단학살)를 자행했다며 성토했다. 미얀마 당국은 난민과 국제사회의 주장에 명확한 근거가 없다고 맞섰다.
미얀마와 방글라데시는 국경을 넘어 도피한 난민들을 2년 안에 본국으로 송환하기로 합의했고 송환 대상자 선별 작업도 일부 진행됐다.
그러나 난민들이 신변안전과 시민권이 보장되지 않는 본국 송환을 거부하면서 로힝야족 난민 송환 개시 시점은 계속 늦춰지고 있다.
한편, 국제사회의 인종 청소 조사를 거부해온 미얀마 당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라카인주 방문 조사를 허용했다고 안보리 순회의장을 맡은 구스타보 메자-쿠아드라 주유엔 페루 대사가 밝혔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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