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서 시작된 삶의 먹먹한 이야기들…소설집 '파인 다이닝'

입력 2018-04-04 07:10   수정 2018-04-04 07:54

음식에서 시작된 삶의 먹먹한 이야기들…소설집 '파인 다이닝'
최은영·윤이형·서유미 등 젊은 작가들 참여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음식을 테마로 한 소설들인데도 침샘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대신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묵직한 현실의 이야기들이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음식을 테마로 한 소설집 '파인 다이닝'(은행나무) 이야기다.
최은영, 황시운, 윤이형, 이은선, 김이환, 노희준, 서유미 등 젊은 작가 7명이 참여해 각기 뚜렷한 개성을 드러내며 진중한 작품 세계를 펼쳐보인다.
첫 수록작인 최은영의 '선택'은 특히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수녀인 화자가 새벽에 일어나 언니에게 줄 미역국을 끓이면서 언니와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본다. 세상의 비정함을 일찍이 느끼고 신에게서 사랑을 구하러 수녀가 된 화자와 달리, 세상과 사람들을 사랑한 언니는 고속열차 승무원으로 취직한다. 결국 회사 측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거리에서 투쟁을 시작한 언니의 삶은 한동안 고통으로 점철된다. 해고된 KTX 승무원들의 이야기다. 소설 속에서 언니가 화자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전단지를 나눠줄 때 화를 내는 사람도 있어. 회사와 관계된 사람도 아니고, 본인 이해관계가 걸린 일도 아닌데 얼굴을 보면서 쌍욕을 하는 거야. 너희가 공부를 잘했으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느냐, 정규직으로 취직하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느냐. 그런 사람들은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우릴 빤히 바라보는 시선, 그것만은 절대 익숙해지지가 않아. 짜증난다는 표정을 짓고 내 손을 치고 가는 사람들을 견딜 수 있어. 그런데 내 앞에 서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모습을 뜯어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힘이 드네."



황시운 작가의 '매듭'은 낙지 전문 식당에서 일하는 주인공 화자가 결혼하자마자 불의의 사고로 몸이 마비돼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는 남편을 지켜보며 그를 부양하는 짐을 지고 바닥으로 침잠하는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꿈틀거리는 낙지의 고통과 잔인한 운명을 짊어져야 하는 인간 삶의 고통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서유미 작가의 '에트르'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폭넓은 공감을 얻을 만한 작품이다. 서른 살이 되도록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월세를 10만원 더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종일 시름에 잠긴 주인공의 고단한 일상을 그린다. 주인공은 한 해의 마지막날 역시 힘들게 취업 준비를 하는 동생과 함께 먹으려고 자신이 일하는 빵집에서 큰맘 먹고 케이크를 사서 퇴근한다. 그러나 케이크를 들고 가는 퇴근길 역시 순탄치 않다.
윤이형 작가의 '승혜와 미오'는 20대 여성인 주인공 승혜가 4년간 사귀어온 동성 연인 미오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이야기다. 아이들을 좋아해서 베이비시터 일까지 하게 된 승혜는 아이를 원치 않는 미오와 갈등을 겪게 되고, 자신이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건 아닌지 회의한다. 어느 날 승혜는 돌봐주고 있는 아이 '이호'네 집에서 이호를 위해 '밀푀유나베'를 요리하고 늦게 들어온 이호 엄마와 셋이서 함께 먹으며 그동안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미오의 상처를 헤아려본다.
윤이형 작가는 대표 집필자로서 책 첫머리 '기획의 말'에 "이 책은 SNS상에서 별다른 기대 없이 주고받은 두 작가와의 농담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새로운 요리를 열심히 시도하는 작가와 그 작가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던 다른 작가를 보면서 요리를 하는 마음과 소설을 쓰는 마음이 어떻게 비슷하고 다른지 궁금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맛있는 음식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준비하고, 만들고, 누군가를 위해 그것을 차리고, 그릇에 담아 가져가고, 건네고,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마음에 관한, 그 시간과 체온과 풍경들에 관한 이야기. 딱 그 정도의 생각에서 시작되었는데, 정말로 식탁이 차려졌다. 재료도, 맛도, 향기도, 요리법도, 담아낸 모양새도 제각기 다르다"고 소개했다.
출판사는 참신한 테마를 중심으로 젊은 작가들의 좋은 작품을 독자들에게 널리 알린다는 취지로 '바통' 시리즈를 기획해 이번 책이 그 두 번째 작품집이다. 독자들이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도록 초판 1쇄분에 한해 특별가 5천500원으로 판매한다.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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