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말을 표준어 아닌 권장어로…사투리 쓸 자유를 허하라"

입력 2018-04-04 10:13  

"서울말을 표준어 아닌 권장어로…사투리 쓸 자유를 허하라"
방언 연구자 정승철 교수 '방언의 발견'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경기도 말씨는 새초롬하고, 강원도 말씨는 순박하며, 경상도 말씨는 씩씩하다. 그리고 충청도 말씨는 정중하며, 전라도 말씨는 맛깔스럽다. 황해도 말씨는 재치 있고, 평안도 말씨는 강인하며, 함경도 말씨는 묵직하다는 인상을 준다."
1900년 10월 9일 발행된 '황성신문'에는 팔도의 말씨를 논한 논설이 실렸다. 글쓴이는 서울말이라고 할 수 있는 경기도 말씨를 새초롬하다고 평가하기는 했으나, 다른 지역 말씨를 촌스럽다거나 어색하다고 깎아내리지 않았다. 서울말이 다른 지역 말투와 비교해 우위에 있다고 보지 않은 것이다.
한 세기 남짓 지난 지금, 서울말과 이외 지역 언어 사이에는 확실한 위계가 생겼다. 정부가 1989년 고시한 표준어 규정은 첫 조항을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못 박았다. 사투리는 어느덧 표준적이지 않은 말이 된 셈이다.
방언 연구자인 정승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렇게 지역 언어 사이에 층위가 생겨난 과정을 추적한 책 '방언의 발견'을 펴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지방어를 뜻하는 방언을 사람들이 언제부터 인식했는지 살펴본 저작이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서울말과 지방어 간에 분명한 대립 구도가 없었다. 예컨대 서울 출신 학자 이덕무(1741∼1793)는 경남 함양에 종6품 관직인 찰방(察訪)으로 부임해 경상도 사투리에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았고, 현지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했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표준어라는 개념이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국가주의의 상징물이었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서울말에 표준어 자격이 주어졌다.
그런데 1936년 '사정(査定·조사하여 바로잡음)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편찬한 조선어학회 내 표준어 사정위원회 구성원을 보면 출신 지역의 편차가 컸다. 73명 중에 과반인 37명이 서울과 경기도 출신이었다.
저자는 "사정위원회가 표준어를 정할 때는 서울·경기 출신 위원에게만 최종 결정권이 있었고, 다른 지방 출신 위원에게는 재심을 청구할 권리만 주어졌다"며 서울말이 표준어가 될 수밖에 없는 체계였다고 비판한다.
서울말이 표준어로 확고히 자리 잡자 한편에서는 사투리를 연구하는 움직임도 일어났다. 조선어학회는 1935년부터 1942년까지 방언을 수집했고, 많은 작가는 방언의 매력을 살린 문학 작품을 발표했다.
해방 이후 표준어의 권위는 더욱 높아졌다. 사투리는 '잡스러운 언어' 취급을 받아 순화 대상이 됐고, 전국적으로 고운말, 즉 서울말 쓰기 운동이 펼쳐졌다. 그 최종 결과물이 표준어 규정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영화와 TV 프로그램에 사투리를 사용하는 배우가 많이 출연하면서 지역어에 대해 관용적인 환경이 갖춰지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말이란 자신이 속한 사회로부터 자연스럽게 물려받는 것으로, 그러한 말을 '틀렸다'고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 침해"라며 "방언 사용권이 존중되는 사회가 지금이라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사투리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회에서 표준어는 써도 되고 쓰지 않아도 되는 권장어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창비. 272쪽. 1만6천원.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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