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진영 "국가안보 위협" vs 개혁 진영 "인터넷 차단은 무용지물"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 국민 8천만 가운데 절반이 쓰는 '국민 메신저' 텔레그램을 차단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전국적 반정부·반기득권 시위에서 보듯 텔레그램은 시위를 조직하고 다른 지방의 상황을 전파하는 통로였다. 이란 최고지도자가 이 시위를 외부 세력이 조장한 폭동으로 규정하면서 텔레그램이 일시적으로 차단되기도 했다.
텔레그램 차단을 둘러싼 찬반 논란은 정치적 보수와 개혁 세력의 충돌로도 번질 조짐이다.
이번 논쟁은 이란의 대표적 보수정치인 알라에딘 보루제르디 이란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회 의장이 1일 "텔레그램이 다른 나라에서 테러 분자의 통신 수단으로 악용된다. 이란의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면서 가열됐다.
보루제르디 의장은 이달 20일까지 이란에서 자체 개발된 메신저 앱이 텔레그램을 대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에선 '수루시'(메시지를 전달하는 천사)와 같은 국산 메신저 앱이 있지만 보안이 취약하고 서비스가 종종 중단되곤 해 인기가 없다.
이란의 강경 보수신문 케이한은 4일 자에 "텔레그램에서 보내는 메시지가 감출 게 없다면 왜 국산 메신저를 못 쓰느냐. 뭔가 숨길 게 있으니까 텔레그램 차단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이란 개혁주의 운동가 골람 레자 자리피언은 국영 IRNA통신에 4일 "오늘날 전 세계는 네트워크로 이어졌다"면서 "인터넷 서비스를 차단하면 국민은 통제받는다고 느끼게 되고, 곧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중도 진영인 이란 의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 모하마드 알리푸르 모흐타르는 "인터넷 서비스를 차단하면 어떻게 해서든 이를 우회하는 방법이 나온다"면서 "텔레그램을 차단하는 것보다 경쟁력 있는 자체 메신저를 개발해 국민이 쓰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입장은 현재 모호하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3일 내각 회의에서 "안전하고 값싼 국산 메신저를 개발하면 텔레그램의 독점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인터넷 공간은 제한이나 독점이 아니라 좋고 쓸모있는 콘텐츠로 발전된다"고 말했다.
이란 매체는 성향에 따라 로하니 대통령이 텔레그램을 차단하는 데 동의했다거나, 텔레그램과 국내 메신저의 경쟁을 원한다고 해석해 보도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인터넷 통제에 원론적으로 부정적이지만,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국가 안보를 내세운 보수 세력의 주장을 고려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다.
이란은 2009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등 대표적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차단했으나 텔레그램은 허용한다.
이란에선 가상사설망(VPN)으로 차단된 SNS에 접속한다. 이란 최고지도자를 비롯해 주요 정치인과 부처, 정부기관도 SNS 계정을 활발하게 운용한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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