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무기금지기구 긴급회의서 밝혀…러시아 '기구 탈퇴' 가능성도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유럽연합(EU)이 '러시아 이중스파이' 암살 시도 사건에 사용된 신경작용제 조사와 관련해 러시아 측의 충분한 정보 공개와 협조를 촉구했다.
4일(현지시간) 영국 진보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이날 러시아 측 요청으로 열린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긴급회의에서 EU 측은 이같은 입장을 나타냈다.
EU는 "러시아 정부는 영국 정부의 정당한 질문에 답변하는 한편, OPCW 사무국과 협조하면서 완전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영국에 기밀을 넘긴 혐의로 고국 러시아에서 복역하다 풀려난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이 지난달 초 영국 솔즈베리에서 신경작용제에 노출돼 쓰러진 것으로 확인되자 영국 정부는 암살 시도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했다.
OPCW 조사관들은 지난달 중순 영국에 도착, 이번 사건에 사용된 독극물 샘플을 확인하는 독립적인 조사를 진행해왔다.
OPCW는 1997년 4월 29일 화학무기금지협정(CWC) 발효와 함께 설립된 화학무기 사용 모니터링 기구로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부가 있다.
러시아는 그러나 영국 측이 제시한 샘플은 물론, 이번 조사와 관련한 OPCW의 절차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회의 소집을 요청했다.
러시아는 자국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지 않은 어떠한 조사 결과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심지어 이번 일이 "영국과 미국 정보기관에 의해 연출된 터무니없는 도발행위"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OPCW 영국 대표단은 러시아의 요구를 일축하면서 "주의를 돌리기 위한 전략이며, 러시아 정부가 반드시 답해야 하는 질문을 회피하기 위해 고안된 허위정보"라고 비판했다.
영국 정부는 이번 사건에 사용된 신경작용제인 '노비촉'의 제조가 "국가기관의 능력에서만 가능한 것"이라면서도 러시아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하지는 못했다는 영국국방과학기술연구소(DSTL)의 발표에 대해서도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실제 영국국방과학기술연구소 발표 후 러시아는 영국 정부가 노비촉의 출처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테리사 메이 총리의 사과를 요구했다.
영국 외무부가 앞서 이번 암살 시도에 사용된 노비촉이 '러시아에서 생산됐다'고 밝힌 트윗을 삭제하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지난달 중순 영국 외무부는 "DSTL에 있는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이번에 사용된 것이 러시아에서 군사용으로 개발된 신경작용제라는 점을 분명히 확인했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트윗 삭제에 대해 영국 외무부는 "러시아 주재 영국 대사인 로리 브리스토우의 설명을 실시간으로 옮겼는데 축약하는 과정에서 대사의 발언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해 이를 삭제했다"고 해명했다.
영국 정부는 DSTL의 분석 결과는 러시아를 배후로 지목하게 된 전체 정보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가디언은 만약 OPCW의 샘플 조사 결과에서도 러시아에서 군사용으로 개발한 노비촉이 사용된 점을 확인한다면 이는 러시아 정부가 개입돼 있다는 영국 정부의 주장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가디언은 그러나 이번 사건에 쓰인 신경작용제 종류와 관련한 상황이 교착상태에 이를 경우 러시아가 OPCW에서 탈퇴할 수 있으며, 이는 화학무기 관리를 위한 전 세계적 노력에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러시아는 이미 시리아 내전에서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OPCW의 조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이날 시리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터키를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번 암살 시도 사건과 관련해 "우리는 상식이 승리하는 것을 원하고 있으며, 국제관계에 더 이상 해가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pdhis9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