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사태가 호기?…동남아 국가들 선거전 악용·단속 우려

입력 2018-04-05 15:02  

페이스북 사태가 호기?…동남아 국가들 선거전 악용·단속 우려
인니 "가짜뉴스 못 막는 SNS 폐쇄" 경고…말레이, 가짜뉴스 단속 입법
필리핀 두테르테, 2016년 대선 때 댓글부대 운영·이미지 가공 의혹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기자 = 페이스북이 보유한 개인정보의 대규모 유출 파문이 동남아시아에도 미치고 있다.
영국 데이터 분석회사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가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수천만 명의 페이스북 회원정보를 빼돌려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는 의혹이 이번 페이스북 스캔들이다.
그러나 대선이나 총선을 앞둔 동남아 국가에서는 페이스북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기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통되는 가짜뉴스의 폐해를 부각해 집권 연장에 걸림돌이 되는 목소리를 막으려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루디안타라 인도네시아 정보통신부 장관은 최근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이 자국민의 개인정보를 수집한다는 증거가 있거나 향후 선거 기간 가짜뉴스를 단속하지 못하면 폐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루디안타라 장관은 개인이나 단체들이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악용할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트위터, 구글의 유튜브 등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겨냥한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내년 4월 대선을 치른다. 선거 운동은 오는 9월부터 시작된다.
조코 위도도(일명 조코위) 현 대통령은 재선을 노리고 있다. 1천만 명 가까운 트위터 팔로워를 둔 조코위 대통령은 2014년 대선 때 공산주의자라는 가짜뉴스가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퍼져 곤욕을 치렀다.
루디안타라 장관은 "페이스북을 폐쇄할 필요가 있으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텔레그램 폐쇄 사례까지 들면서 "또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텔레그램은 메시지, 사진, 문서 등을 암호화해 전송할 수 있는 메신저다. 인도네시아는 작년 7월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 국가(IS) 추종자들의 테러 활동에 악용된다는 이유로 한 달여 간 텔레그램 접속을 차단했다.
인도네시아는 이번 페이스북 같은 사태가 터졌을 때 형사처분할 수 있는 개인정보 보호 법령을 2016년 이미 만들었다.
페이스북 직원들이 이 법령을 어기면 최장 12년의 징역형과 최고 120억 루피아(9억3천만 원)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루디안타라 장관의 설명이다.



말레이시아 하원은 지난 2일 가짜뉴스를 유포하면 6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50만 링깃(1억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는 법안을 의결했다. SNS 게시물도 단속 대상이 된다.
형식적인 상원 심의와 국왕 승인 절차만 남은 이 법안의 제정은 이르면 5월로 예상되는 총선을 앞두고 이뤄졌다.
국영기업에서 수조 원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으로 위기에 처한 나집 라작 총리가 자신과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려 한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말레이시아의 가짜뉴스 단속법이 전부 또는 일부 허위 내용을 담은 뉴스나 정보, 자료, 보고서 등의 배포를 불법화했다며 말레이시아에 심각한 가짜뉴스 문제가 있는지 분명치 않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도 페이스북이나 왓츠앱 등 소셜미디어를 통한 가짜뉴스 유포가 심각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막기 위한 법률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33년째 권력을 쥐고 있는 훈센 캄보디아 총리는 오는 7월 총선을 앞두고 페이스북을 선거전에 활용하고 있다. 각종 선심정책을 소개하고 야당을 공격하지만, 반정부 글이 올라오면 가차 없이 처벌한다.
지난 2월에는 훈센 총리의 페이스북 계정에 약 940만 명이 '좋아요'를 누르고 그 수만큼 팔로워로 등록돼 있자 망명 생활 중인 야당 지도자가 페이스북을 상대로 진위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을 미 법원에 내기도 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때 우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스북 정보유출 사태에 연루된 CA의 모회사인 '스트래티직 커뮤니케이션 랩'(SCL)이 지난 필리핀 대선 때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범죄와 싸우는 전사'라는 이미지를 씌어 당선에 도움을 줬다고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4일 보도했다.
SCL이 자사 웹사이트를 통해 이를 홍보했지만, 구체적 내용은 삭제된 상태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필리핀 대선 1년 전인 2015년 5월 알렉산더 닉스 SCL 최고경영자(CEO)가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했고 첨단 기술이 향후 선거를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발언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대의 한 연구진은 소셜미디어 여론조작을 다룬 보고서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이 대선 당시 400∼500명의 사이버 부대를 만들어 자신을 지지·옹호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고 주장했다.


kms123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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