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통판사 천종호, '장발장·괴물' 소년범을 변론하다

입력 2018-04-0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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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통판사 천종호, '장발장·괴물' 소년범을 변론하다
8년간 소년법정 근무 되돌아보는 책 출간…인세 전액 기부 예정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8년 동안 법원의 한직인 소년법정 근무를 자청해 1만2천여 명의 재판을 맡아 '소년범의 대부', '호통판사'로 불리는 천종호 부산지법 부장판사.
그가 한때의 실수와 사회의 외면으로 '괴물'과 '장발장'이 된 아이들을 온몸으로 변론하는 책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Apologia)'을 출간했다.
소년범을 다룬 책으로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2013),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2015)에 이어 세 번째다.

그는 한 소년범의 에피소드로 책을 시작한다.
의지할 곳 없어 노숙생활을 하던 소년이 더는 버티기 힘들자 '어려울 때 연락하라'던 천 판사의 말이 생각나 밤새 걸어 법원으로 찾아왔다.
안타까운 마음에 아침밥을 먹었는지 물어보니 소년은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사흘을 굶었지만 절도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천 판사는 책에서 이 땅의 소년범들이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법과 정의로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이란 작은 도움과 격려 한 마디에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천 판사의 믿음이다.
천 판사가 법원 보호처분을 받았지만 보살펴 줄 부모나 가족이 없는 비행 청소년을 돌보는 대안 가정인 청소년 회복센터 운영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지난해 9월 친구들에게 폭행당해 피투성이가 된 여중생 사진 한 장으로 온 나라가 들끓는 가운데 소년범도 사형, 무기징역이 가능하도록 소년법을 폐지하라는 여론이 높았다.
천 판사는 사태가 심각할수록 근시안적으로 접근하지 말자며 되묻는다.
"청소년에게 무거운 책임을 부과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자유와 권리도 부여해야 한다. 선거권을 비롯해 형벌을 부과할 근거가 되는 법률 제정·폐지·개정에 참여할 정치적 권리도 포함돼야 한다. 우리 법체계는 청소년에게 성인과 같은 법적 책임을 물을 만큼 그들의 자유와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는가?"
그는 "소년 범죄에서 강력범죄는 전체 5% 수준, 강력범죄 중 잔혹하고 엽기적인 사건은 1%에 불과하다"며 "처벌 상한을 높이거나 처분 기간을 늘리면 될 일이지, 소년법을 폐지해 나머지 95% 소년 범죄도 형법을 적용하면 소년범이 모두 전과자가 돼 버린다"고 말했다.
그는 미처 피지 못한 꽃들이 한때의 실수로 꺾여서는 안 되며 배가 고파 빵을 훔친 아이도 구제받을 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은 소년법 폐지 논란, 학교 폭력, 법과 정의, 청소년 회복센터 등 천 판사가 2010년 창원지법 이후 부산지법을 거쳐 8년간의 소년재판을 하며 느낀 소회와 에피소드 등을 다룬다.
천 판사는 인세 수익 전액을 청소년 회복센터에 기부할 예정이다.
천 판사는 "소년재판을 계속할 수 있다면 승진도 영예도 필요 없다"는 바람과 달리 지난 법원 정기 인사에서 부산지법 형사법정으로 발령 났다.
win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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