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준 향상 미흡에 민심 이반…헝가리 총리 4선 확실시
(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8일(현지시간) 실시될 헝가리 총선에서 4선을 예약한 빅토르 오르반(54) 총리는 20대 중반이던 1988년 헝가리계 미국 부호인 조지 소로스에게 풀뿌리 민주주의를 연구하겠다며 지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당시 오르반은 헝가리가 곧 독재로부터 민주주의로 이행하게 될 것이라며 이행과정에 주요 요소 중 하나가 시민사회의 재정립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내놓았다.
소로스의 도움을 받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시민사회의 역사를 공부한 오르반은 현재는 젊은 시절 꿈꾸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길을 가고 있다.
그는 기대했던 친서방 정치인이 아니라 극우의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고, 시민사회는 물론 소로스에게 골칫거리가 됐으며, 냉전 후 동유럽 내 실패한 자유주의(liberalism)의 전형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현재 동부 및 중부 유럽 사회는 1989년 공산주의 붕괴 후의 자유민주주의적 트렌드에 흥미를 잃은 오르반 총리나, 자유주의에 대한 점증하는 반감을 활용하는 다른 지도자들과 같은 부류에 지배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7일 보도했다.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의 고위 보좌관을 지낸 지리 페헤는 "이는 지역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민주주의는 현 정치인 세대가 터득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입증됐다"라고 설명했다.
90년대 초반 하벨이나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와 같은 유명 반체제 출신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 유권자들은 곧 서유럽과 같은 생활 수준을 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현실상의 진전은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지역 유권자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악화시키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국가재산의 사유화가 일반 국민보다는 외국 투자자들과 부패한 정치인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됐다.
이런 분위기는 지역 국가들의 우경화를 부추기면서 정치 지도자들도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체코의 경우 밀로스 제만(73) 현 대통령은 공산주의 종식 무렵에는 자유주의적 성향의 반체제 인사였으나 지금은 극우 쪽의 환심을 사려 하고 있다. 지난해 선출된 안드레이 바비스 총리는 결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적이 없으며 이전의 정치 엘리트들을 공격하면서 대중영합주의적 기반을 공고히 하고 있다.
폴란드 여당의 실세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대표는 공산주의 붕괴 후 폴란드의 초기 정치 지도자들로부터 외면받은 보수파로, 그의 이민 반대 및 독재주의적 사고는 더딘 사회경제적 변화에 실망한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헝가리 오르반 총리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스티브 배넌으로부터 영웅으로 불릴 만큼 지역 다른 지도자들보다 훨씬 더 자유를 억압하는 대중영합주의자의 면모를 보인다고 NYT는 전했다.
오르반 총리는 2015년 유럽 난민 위기 때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개방 정책을 비판하면서 레이저 철조망을 세르비아와 맞닿은 국경에 설치했다. 난민을 "독극물"이라고 표현해 거센 비판을 받았지만 이를 통해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오르반 총리가 이런 길을 걷게 된 데는 헝가리 정치 상황에 실용적으로 접근한 데 따른 것이라는 의견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1998년부터 4년간 처음 총리직을 수행하고 나서는 이념보다는 유권자들의 동향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권력의 속성에 대해서도 더 잘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오르반 총리의 고문인 요세프 데브레체니는 오르반 총리가 민주주의라는 것이 권력이 금세 사라진다는 측면에서 쓸모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그런 관점에서 그는 정권을 다시 잡으면 잃지 않는 점에 힘을 쏟아왔다"라고 전했다.
오르반 총리가 독일과 네덜란드 유력 정치인들과 접촉을 넓혀가면서, 그의 영향력은 서유럽 쪽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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