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법치·인권 문제 EU에 반기…EU 기금 혜택 누리면서 부패 불거져
(제네바=연합뉴스) 이광철 특파원 =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8일(현지시간) 총선에서 압승하며 4선에 성공하자 유럽연합(EU)의 속내도 복잡하게 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반난민을 외치는 그의 재집권이 EU에 커다란 도전이 되고 있다면서 인권과 법치, 난민 문제 등 EU의 기본 가치는 외면하면서 EU기금 혜택은 누리는 동유럽 국가들을 제어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최근 기사에서 헝가리 빈곤지역 개발과 철도·도로 건설, 시설 개선 등에 쓰이는 공공 투자의 80%가 EU의 결속기금에서 나오고 있다면서 이 사업 계약의 일부를 오르반 총리의 측근과 가족이 따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3년 오르반 총리의 장녀와 결혼한 이슈트반 티보르는 이후 EU기금이 들어가는 가로등 설치 계약을 수주했다.
헝가리 독립언론 '디렉트36'은 LED 등 가격이 하락세에 있는데도 일부 지역에서는 가로등 설치 가격이 정상가격보다 56% 비쌌다고 폭로했다.
올 1월 EU 부패감독청(Olaf)은 헝가리 가로등 사업에 '심각한 규정 위반'과 '이익 충돌'이 있다며 4천만 유로(한화 525억원)의 기금 회수를 권고했다.
가스배관공 출신으로 오르반 총리의 친구인 뢰린츠 메자로스는 건설, 부동산, 미디어, 와인회사 등 121개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
투명성 감시 단체에 따르면 메자로스 일가가 운영하는 기업 수익의 83%는 EU 기금에서 나오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난민 분산 수용을 요구해온 EU를 '적'으로 규정하고 헝가리 민족주의를 앞세운 오르반 총리의 일가와 측근들은 EU 자금의 혜택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체코는 EU기금 부패 문제로 2013년부터 2년 동안 기금 제공이 동결된 적도 있지만 헝가리는 아직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한편 폴란드는 공공 투자의 50%, 루마니아는 60%를 EU 기금에 의존하고 있다.
2004년 EU가입 이후 막대한 지원금이 이들 국가에 제공됐지만, EU가 요구하는 정치, 사회 분야의 가이드라인은 무시되기 일쑤다.
폴란드는 작년 말 사법부 인사권을 정부가 장악하면서 EU와 심각하게 충돌했다.EU는 사상 최초로 회원국 의결권을 제한하는 리스본 조약 7조의 발동을 검토했지만 헝가리 등의 반대로 만장일치 의결이 어렵다는 판단 때문에 실제 적용은 유보하고 말았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은 EU 기금 집행에 민주적 정치체제 보장이라는 단서를 추가하는 방안을 지지하고 있는데 2024년 이후에나 가능한 방안이다.
EU가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게 되면 동유럽 국가들이 중국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부다페스트를 찾은 리커창 중국 총리는 중동부 유럽에 수십억 유로를 투자하겠다며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동참을 촉구했다.
오르반 총리는 "중국의 투자는 훌륭한 기회"라고 반겼다.
반면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에 공개적으로 경계심을 드러내며 MOU 서명도 거부하고 있다.
가디언은 중요한 문제와 돈이 걸린 문제이지만 유럽 정치 지도자들이 오르반 총리를 변화시킬 준비가 돼 있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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