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준비 부족에 반발 부딪치면 '유턴'…대입 개편안서도 되풀이
(서울=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교육부가 11일 내놓은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을 보면 나름대로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교육현장에서 논란이 된 주요 쟁점을 망라하고 여러 개선책을 평면 나열하는 수준의 입시안으로, 입시 정책의 주무부처로서 책임감을 갖고 정책을 제시하는 의지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는 내용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를 공론화해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일부 정책은 여론을 의식해 국정과제를 비롯해 정부가 내세운 교육개혁 기조를 스스로 거스르는 듯한 내용도 포함돼 국가교육회의 논의 과정에서 적지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교육부가 숙의·공론화를 거쳐 반드시 결정해달라고 요청한 '주요 논의사항' 중에서도 가장 앞부분에 있는 선발 방법의 균형이 대표적 사례다.
교육부는 객관적 시험을 통한 수능전형과 고교학습 경험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학생부종합전형 간에 적정한 비율을 모색해 달라고 당부했다. 학종전형 확대를 경계하고 수능전형 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주문한 것이다.
그러면서 '다양한 수험생들의 응시기회 보장을 통한 학생·학부모 만족도 제고와 재수생, 검정고시생, 만학도 등의 재도전 기회 담보'를 기대효과로 꼽았다.
'금수저 전형, '깜깜이 전형'으로 불리며 공정성 논란에 휘말린 학종전형이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지나치게 비중이 높아지는 것에 대한 반발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수능전형이 비정상적으로 확대될 경우 고교 수업이 수능 중심으로 회귀할 우려가 있다는 반대의견도 곁들였지만, 지금까지 입장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그동안 학종전형에 대한 비판이 계속 제기됐지만, 교육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여러 의견이 있지만 학종전형 방향은 맞다"고 강조하면서 학생부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최근 서울대·고려대 등에 2020학년도 입시에서 정시 모집 인원을 늘려달라고 요청한 데 이어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에서 수능전형 비율 확대 방침을 밝힌 것은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개편안의 수능 평가방법 3가지 안에 포함된 수능 원점수제 또한 수능 무력화 정책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눈치 보기라는 분석이 많다.
수능 원점수제는 1994∼2004학년도 실시된 원점수 체제 수능과 비슷하다. 상대평가보다 변별력이 크지만 표준점수가 없어 탐구영역 선택과목 간 유불리를 보정할 수 없고 대학·학과별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부작용이 있다. 한마디로 수능 이전 학력고사 체제로 회귀하는 제도로, 원점수제를 벗어나 표준점수제를 거쳐 절대평가제까지 논의하는 교육정책의 기조와는 한참 동떨어진 시대역행적인 제도까지 선택지 중 하나로 제시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개편안에는 논술전형 축소·폐지와 교과 특기자 전형 폐지도 주요 쟁점 사안에 포함됐다.
사교육 유발을 이유로 국정과제 등을 통해 이미 확정됐거나 재정지원사업이나 공교육정상화법을 통해 추진 중인 정책을 '쟁점'으로 분류한 것이다.
특목고 우대 등 학교 차별을 막기 위한 출신 고교 무자료(블라인드) 면접 도입 또한 쟁점 사안으로 분류됐다.
교육부는 지난해 최소 4과목에 절대평가를 적용하는 내용의 2021학년도 수능 개편 시안을 발표했다가 논란이 일자, 개편을 1년 미루고 종합 대입제도 개편안을 올해 8월까지 마련해 2022학년도부터 적용하기로 한 바 있다.
또 지난해 12월 말에는 유치원 영어 특별활동 금지를 검토한다고 했다가 거센 반대 여론에 부닥치자 역시 전면 보류했다.
지난 3월 확정된 자율학교와 자율형 공립고의 교장공모제 확대 방안도 보수진영 반발로 입법예고 때보다 범위가 크게 축소됐다.
이런 오락가락 행보를 두고 사전에 철저한 준비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다 정치권에 휘둘리면서 여론 살피기에 급급한 상황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교육부가 전반적으로 뚜렷한 교육철학과 가치관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교육부 관료 가운데 백년대계를 위한 확고한 소신과 비전을 바탕으로 한국 교육이 나아갈 길을 아는 이가 거의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k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