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미 양국이 주미 한국대사관과 미 국무부 간 협의 채널을 정례화하기로 했다. 조윤제 주미대사가 2주 전 수전 손턴 국무부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지명자와 만나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진전상황 공유와 조율, 공조 강화를 위해 정기 접촉을 갖자고 제안하면서 이뤄졌다고 한다. 곧바로 지난주 양측 간 첫 실무회의가 열렸으며, 오는 16일엔 조 대사와 손턴 지명자가 회동하게 된다. 두 사람은 각각 양측의 대표격으로 정례적 만남을 이어갈 예정이다. 반가운 일이다. 급진전하는 한반도 정세를 맞이해 한미 당국 간 협의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대미 외교 최전선에 있는 주미 대사관과 미 국무부 간 협의 채널이 정례화된다는 것은 아주 시의적절하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더욱 배려하는 측면도 있고, 그만큼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미 간 물 샐 틈 없는 공조가 빛 샐 틈 없는 공조로 한 차원 격상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 국면에서 한미 간 협의는 청와대-백악관과 국정원-CIA(미 중앙정보국) 채널 중심으로 가동돼왔다. 북미 두 정상의 결단에 의한 '톱다운'(상의하달) 방식으로 회담이 성사된 사정과 관련이 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외교부-국무부 채널이 위축된 모양새였다. 한 달 전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전격으로 경질된 데다가, 빅터 차 주한 미 대사 지명자 낙마와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교체 등의 사태가 부정적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당분간 이런 기조가 유지되겠지만, CIA 국장 출신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가 인준청문회를 거쳐 이달 말께 공식 취임하게 되면 한미 간, 북미 간 협의 채널이 정보당국에서 외교당국으로 옮겨질 것으로 보인다. 5월 말~6월 초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까지는 백악관과 정보당국의 주도가 불가피하지만, 적어도 회담 이후 후속협상은 국무부가 맡는 게 바람직하다. 폼페이오 장관이 취임하면 국무부 한국 담당 라인도 조속히 정상화해야 한다. 그 첫걸음인 주미대사관과 국무부 간 핫라인을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이어가길 바란다.
한반도 비핵화의 근본적 해법과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등을 다룰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 여부는 우리의 중재외교 역량과 직결돼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각의 연기나 무산 우려를 불식하고 개최 날짜가 잡히는 등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만, 북미 간 불신은 여전하고 비핵화 개념과 프로세스를 놓고도 인식차가 적지 않아 우리가 북한과 미국을 설득해 상호 불신을 해소하고 흥정을 붙이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릴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흉금을 터놓고 상호 존중과 신뢰를 쌓는 일이 급선무인 것도 그래서다. 그래야 미국의 진의를 가감 없이 북한에 전하고, 북한의 속내를 가감 없이 미국에 전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와 불신을 예방할 수 있다. 지금까지와 같이 우리 정부의 진정성 있고 세심한 접근이 요구된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펼쳐온 우리의 중재외교 성적은 만족스러운 편이다. 제2의 전쟁위기설이 나돌 정도로 험악했던 북미 대치 상황을 대북, 대미 특사 외교를 통해 남북, 북미 정상회담 개최로까지 급반전시켰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한다는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을 바탕으로 한 우리의 외교 노력이 어느 정도 결실을 본 것이다. 특히 최근 북한이 비핵화 논의 의사를 미국에 직접 전달하고 트럼프 대통령도 북미 접촉 사실을 공개하면서 "양국 관계가 과거와 달라지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표명하는 등 북미 정상회담에 우호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북미 양국의 자세 변화를 두고 청와대 관계자가 "3월 초·중순부터 회담 상대를 향한 블러핑(허세·엄포)이 없어졌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정도다. 진전 상황은 긍정적이지만, 과도한 낙관은 금물이다. 극과 극을 중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돌발 변수에 대비하고 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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