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단체들 기초생활보장·긴급지원제도 개선 촉구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충북 증평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모녀가 숨진 지 2개월여 만에 발견된 사건에 관해 빈곤문제 관련 시민단체들은 12일 "모녀는 기초수급·긴급지원 등 빈곤 지원제도를 두드렸어도 높은 장벽 때문에 탈락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빈곤사회연대·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은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히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경찰에 따르면 충북 증평군의 한 아파트에서 6일 41세 여성이 네 살배기 딸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시신 상태 등을 고려했을 때 모녀가 적어도 두 달 전에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모녀는 보증금 1억2천900만원짜리 32평 임대 아파트에 상가보증금 1천500만원·차량 3대 등 자산이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숨진 후 소득이 중단되고 1억5천만원가량 부채를 떠안으면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현재까지 수사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빈곤단체들은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소득을 월수입과 같은 실제 소득뿐 아니라 재산에 대한 소득 판정도 포함하는 점을 지적했다.
증평군은 농어촌 지역이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재산 한도액이 2천900만원인데, 모녀의 경우 부채가 1억5천만원가량 돼 아파트 보증금을 초과하므로 재산 한도에는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모녀는 차량을 보유했고, 기초생활보장제는 차량을 소득환산율 월 100%로 계산한다. 차량 가치가 500만원이라면 한 달 소득 500만원이 있는 것으로 판정되는 것이다.
증평 모녀는 부채로 인해 차를 압류당해 차량 처분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는데, 기초생활보장제는 아예 실물이 압류된 상황이 아니면 이를 고려치 않고 계산에 넣는다.
빈곤단체들은 "긴급복지지원제도의 경우에는 부채를 다급한 생계 등으로 인한 경우만 인정하는데, 통상적으로 부채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우므로 증평 모녀는 이 제도 역시 신청했어도 지원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송파 세 모녀' 죽음 이후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위한 일제 조사가 수차례 이뤄졌으나 반복된 '사회적 죽음'을 막지 못했다"며 "대상자를 발굴해도 경직된 지원 체계와 까다로운 선정기준 내에서는 지원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빈곤사회연대에 따르면 정부는 송파 세 모녀 사건 직후인 2014년 2∼3월 빈곤계층 일제 조사를 했고 이에 7만4천여명이 신청했는데, 기초생활보장제·긴급복지지원제 지원을 받은 이는 신청자의 9%인 6천700명에 그쳤다.
단체들은 "보건복지부는 2015∼2016년에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빈곤 사각지대를 발굴하겠다고도 했으나, 전체 발굴자 21만명 중에 단 1.6%인 3천444명만 지원받는 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빈곤의 양상이 다양해지는 만큼 공공부조 수급에 대한 엄격한 잣대도 변해야 한다"면서 "당국은 전수조사·발굴체계 개편 등 반복되는 '땜질 처방'을 그만두고 공적지원 체계로의 진입장벽을 낮추라"고 촉구했다.
한편 시민단체들은 "일부 언론은 증평 모녀가 갖고 있던 자산에 대해 지나치게 상세히 다루고 있다"면서 "누구나 갑작스러운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진짜 가난' 같은 낙인 등으로 망인의 존엄을 훼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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