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물된 '워싱턴 인맥' 대체할 교섭창구 찾아 동분서주
전문가 "위협 진지하게 받아들이란 조언 시주석에 전해지는지 의문"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미중 무역갈등이 격화하면서 무역전쟁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정작 당사자인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무역전쟁 우려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중국 수뇌부가 트럼프 대통령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의 호전적 무역정책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자 교섭창구를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왕치산(王岐山) 중국 국가 부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적 무역정책의 대응책을 마련코자 미국 주요 기업가들과 전직 각료들을 찾아다녔고 이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경제책사' 류허(劉鶴) 부총리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의 데이비드 램튼 교수는 NYT에 지난 2주 동안에만 중국 관료 5명이 자신을 찾아와 조언을 구했다면서 "그들(중국 관료들)은 '우리가 누구와 대화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고 말했다.
중국 관료들과 만난 미국 전문가들은 시 주석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중국의 핵심 산업 육성책인 '중국 제조 2025'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강한 불만을 고려할 때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NYT는 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이런 견해가 시 주석에 제대로 전해지는지, 아니면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을 엄포로 받아들이고 미국이 이번에도 한 발 뒤로 물러설 것이라는 기대감에 그런 조언들을 무시하는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시 주석은 집권 2기로 들어서면서 역대 중국 어느 지도자보다 많은 '미국통'을 대거 등용했다.
왕후닝 상무위원은 젊은 시절 학자로서 미국을 방문한 경험을 책으로 내기도 했고 왕치산 부주석은 수십년간 미국 월스트리트에 두꺼운 인맥을 구축했다.
류허 부총리는 미국 시턴홀대 경영학 석사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행정학 석사학위를 보유했고 양제츠(楊潔지<兼대신虎들어간簾>)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은 미국 주재 중국대사를 지냈다.
NYT는 "이런 전문성을 갖췄음에도 중국 수뇌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흔들어버린 미국 정치지형 속에서 어쩔 줄 모르며 교섭창구를 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가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은 그들의 기존 미국 인맥이 국제 금융이나 외교 부문에서 경력을 쌓은 정계 주류 인사들이라는 데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런 워싱턴 주류 인사들은 모두 뒷전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스인훙(時殷弘) 중국 인민대 교수는 "중국 정부 관계자들의 워싱턴 인맥은 대부분 트럼프 대통령의 적들이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그 사람들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중국 수뇌부가 장차 자신들의 워싱턴 인맥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이들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낙마하거나 2선으로 물러난 것도 문제다.
대중 보복관세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진 게리 콘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지난달 사임했고 중국의 대미 외교채널 중재 역할을 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도 가족의 중국 내 기업 문제로 뒤로 물러났다.
마음이 급해진 왕 부주석은 최근 몇 주간 티머시 가이트너, 헨리 폴슨, 로런스 서머스 등 전직 미 재무장관 3명을 비롯해 로버트 졸릭 전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윌리엄 코언 전 국방장관을 만났다.
업계 인사 중에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CEO, 시스코의 척 로빈스 CEO, 사모펀드 블랙스톤 그룹의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솔로몬 차기 CEO 등과도 접촉했다.
램튼 교수는 이런 곤혹스러운 상황에도 중국 정부는 "동맹국들을 소외시키고 스스로 정치기반을 갉아먹으며 국민적 고통의 한계점이 낮은 미국 정권보다 더 오래 버틸" 수 있다며 안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mong07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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