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중일·한미' 거쳐 5末·6初 '장미회담'…남북 비핵화 성과, 시기 변수
'회담장소' 수싸움…평양·워싱턴 이외에 판문점·제주도, 울란바토르·스톡홀름도
전인미답 길 밟는 북미정상…남은 기간 치열한 전초전, 본게임 승부 좌우할수도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김정은이 미국에 온다면 만나겠다. 회의 탁자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면서 더 나은 협상을 할 것이다. 거기(북한)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분께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미국에) 오겠다면 만나겠다."
2016년 6월 16일(현지시간) 대선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애틀랜타 유세장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햄버거 협상'을 꺼냈을 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 자신마저도 "아마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2년 가까이 흐른 지금, 한반도 비핵화 시계가 숨막히게 돌아가면서 '세기의 핵 담판'으로 기록될 북미 정상 간 '대좌'가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5월∼6월 초'에 맞춰진 지금의 시간표 대로라면 사상 초유의 북미 정상 간 만남은 '장미 회담'으로 치러지는 셈이다.
17일로 준비기간을 열흘 남긴 4·27 남북정상회담이 비핵화 본게임이 될 북미정상회담의 향배를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로 떠오른 가운데 한미간 긴밀한 공조 속에서 북미정상회담 준비에도 박차가 가해지고 있다. 장소와 시기 '퍼즐 맞추기'를 포함해 사활을 건 북미 간 수 싸움도 한창이다.
실제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 13일 전화 브리핑에서 아직 날짜와 장소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면서도 "최근 몇 주간 북미 간에 끊임없는 접촉이 있었다"며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경험이 풍부한 인사들이 많이 동원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앙정보국(CIA) 수장으로서 그간 북한과의 막후 채널을 주도하며 북미정상회담 준비를 총괄 지휘해온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 지명자가 의회의 인준 문턱을 무사히 통과, 이달 말쯤 공식 취임하게 되면 준비 작업은 한층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그에 맞춰 북미 정보라인 간 '비밀 채널'이 국무부-외무성 간 공식 외교라인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작지 않다.
회담의 개최 D-데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8일 한국 특사단을 통해 김 위원장의 초청장을 받았을 당시 '5월 이내'를 언급했다가 지난 9일 '5월 어느 시점이나 6월 초'로 눈금을 살짝 조정했다. 이후 굴러가는 상황을 보며 미국의 페이스대로 탄력적으로 움직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4·27 남북, 5월 한·중·일 및 한미 등 북미정상회담 전 잡힌 연쇄 정상회담들로 인해 현실적으로 '5월 말 또는 6월 초'로 시기가 압축되는 가운데 구체적 날짜는 비핵화 사전논의의 추이 및 장소 결정 등과 맞물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이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조치'에 거부감을 드러내며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관철을 위한 속도전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북한으로부터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할 경우 '택일'을 미루며 압박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어느 정도의 비핵화 관련 성과를 견인하느냐에 따라 북미정상회담 일정의 완급이 조절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이다.
장소 선정이 조기에 이뤄지느냐 아니면 난항을 겪느냐도 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여기에 지난 13일 급작스레 이뤄진 '시리아 공습'이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돌출 변수가 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간 핵 보유를 체제 보장의 안전판으로 여겨온 김 위원장이 시리아 사태를 지켜보며 비핵화에 대한 심경 변화를 일으킬 경우 협상이 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현장'이 될 장소 선정을 둘러싸고 북미, 그리고 중재자 내지 길잡이를 자임한 한국 간에 3각 셈법도 복잡하게 가동되고 있다. 어느 곳이 낙점되느냐에 따라 상징성과 함의가 달라져서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바로는 북한은 당초 평양 개최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으로선 트럼프 대통령을 '안방'으로 불러들일 경우 정상국가 이미지와 함께 세계 최강국의 지도자에 맞먹는 '동급'이라는 점을 부각할 수 있다.
그러나 평양 카드는 정치적 부담을 고려할 때 미국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지이다. 미국 쪽에서 '경호상 수백 명의 미국 선발대가 성조기를 매단 캐딜락을 타고 평양을 누비고 다녀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북한 측에 반문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트럼프 대통령이 2년전 언급한 '햄버거 협상'의 무대로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도 가능한 후보지이지만, 현재까지 비중 있게 거론되지는 않는다. 경호상의 문제와 함께 전용기 상태 등 김 위원장의 장거리 이동에 현실적 제약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 북미 양쪽의 홈그라운드를 제외한 중립적인 '제3의 장소'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북측이 차선책으로 제안한 것으로 소문이 도는 몽골 울란바토르가 의미있는 카드로 주목받고 있다. 몽골과 함께 스웨덴도 유치에 적극적이다.
중재자인 한국도 여전히 후보이지만 북미 모두 자칫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길 수 있다는 점에서 우선순위로 두지 않으려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과 함께 일각선 제주도의 이름을 올리기도 한다. 만약 판문점으로 결정된다면 분단의 장소에서 화해의 출발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수 있다.
하지만 북미정상의 스타일상 파격이 연출될 가능성도 완전히 차단할 순 없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슈퍼 매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취임 첫날인 지난 9일 각료회의에서 '5월∼6월 초' 시점을 공식화하는 등 북미담판에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아주 멋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한껏 표하기도 했다.
전인미답의 길에 발을 디딘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회담의 성패와 함께 누가 승자가 될지 여부는 협상장에서의 개인기와 별도로 남은 한 달여 간 전초전에서의 승부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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