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10% 국외 탈출, 저임노동 강요 '의무' 개정 요구 고조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아프리카의 소국 에리트레아는 국민에게 '내셔널 서비스'라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내셔널 서비스는 일부 예외를 빼고 전 국민에게 원칙적으로 55세까지 공무원이나 군대에 복무할 것을 요구한다. "자립국가 건설"을 명분으로 하고 있지만 국민에게 노예 처럼 저임금 노동을 강요한다는 비판이 따라 다닌다. 의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외로 도망하는 사람도 끊이지않고 있다.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에 따르면 2016년 말 현재 국외 이주자는 45만9천명에 달해 전체 인구 495만명의 10%에 육박했다.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수도 아스마라에서 북동쪽으로 50㎞ 지점에 있는 산중에서는 '가브테레이댐'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높이 42m, 총저수량 5천만㎥ 규모로 에리트레아 최대 규모인 이 댐은 내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에서는 드물게 외국의 기술이나 자금 지원 없이 자력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장 기술감독인 대니얼 마브라트(34)는 "이 댐이 경제적 혜택 외에도 에리트레아에 많은 것을 안겨줄 것"이라고 역설했다. 현장 근로자는 매일 1천300명 정도. 대부분 내셔널 서비스 복무자다. "자립 실천의 장"이라는게 현장에서 돌아온 대답이다.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와의 30년에 걸친 투쟁 끝에 1993년 독립했다. 이 사이 옛 소련 등의 지원을 받은 에티오피아와는 달리 외국의 지원이 거의 없이 자력으로 독립을 쟁취한데 대해 국민들은 자긍심을 갖고 있다. '자립'은 건국 이후 국시가 됐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1995년 내셔널 서비스가 도입됐다.
고교 3학년이 되면 1년간 기숙사에 들어가 군사훈련을 받는 것으로 "국민 한사람 한사람에에 부과된 자립국가 방위"를 주입시킨다. 수능시험 성적이 좋은 사람은 대학을 거쳐 관청 등에 배속된다. 성적이 좋지 않은 사람은 고교 졸업 후 사병이나 공무원이 된댜. 직종이나 근무지가 희망대로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셔널 서비스 의무가 면제되는 경우는 남성은 아버지를 잃어 세대주가 된 경우, 여성은 결혼한 경우 등에 국한된다. 애초 18개월이던 서비스 기간도 원칙적으로 55세까지로 연장됐다. 한창 일할 나이의 남자들이 내셔널 서비스에 징발되다 보니 농업이나 어업, 자영업은 주로 여성들이 담당하고 있다.
임금은 매우 낮다. 대졸자로 관청에 근무하는 한 40대 남성은 월급이 700 나크파(약 19만 원)라고 밝히고 "임금이 아니라 용돈"이라고 말했다. 이 나라의 2014년 1인당 국민소득은 680 달러(약 72만6천 원)로 세계 최빈국중 하나다. 의료비와 교육비는 원칙적으로 무료이고 식료품도 대부분 배급된다고 하지만 결혼해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외로 도주하는 사람이 많다.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에 따르면 2016년 말 시점의 국외이주자가 국가 전체 인구 495만명의 10%에 가까운 45만9천명에 달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정권의 억압과 함께 내셔널 서비스제도가 인구 국외유출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야마네 게브레메스켈 정보장관은 "젊은이들에게는 풍요로운 생활에 대한 동경과 외국에 대한 환상"이 있다면서 국민을 꼬드기는 "다른 나라의 음모"가 배경이라고 주장했다.
에리트레아아는 원래 재외 국민이 많다. 독립투쟁 시절 전쟁을 피해 조국을 떠난 사람들이 많아서다. 디아스포라 에리트레아인으로 불리는 재외국민이 전세계에 1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재외국민이 국내 가족에게 송금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의 송금이 없으면 생활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국외 친척이나 각국에 있는 에리트레아인의 존재가 외국으로 나가려는 젊은이들의 등을 떠밀고 있다. 이들은 에리트레아 정부 재정에 기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수입의 2%를 '디아스포라세'로 납부하도록 요구한다. 내셔널 서비스를 피해 국외로 나가면 엄한 처벌대상이지만 세금 납부를 계속하면 귀국도 쉽게 허용된다고 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유럽 국가의 난민거부 움직임 등이 강화되면서 내셔널 서비스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국제적 압력도 높아지고 있다. 정권내에서 기간 단축 등을 검토했지만 기업의 인력흡수능력에 한계가 있어 미뤘다. 유럽에서 20여년 생활하다 수년전 귀국했다는 한 남성은 "내셔널 서비스는 독립을 지키기 위해 필요했지만 인구유출이 계속되는 국가에는 밝은 장래가 없다"며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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