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노(NO)로는 충분하지 않다'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일은 전 세계의 많은 이에게 충격을 안겼다.
그러나 캐나다 출신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은 트럼프 등장이 돌발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노로는 충분하지 않다'(열린책들 펴냄)에서 트럼프의 부상이 지난 반세기 동안 최악의 동향들이 혼합하면서 만들어낸 논리적인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책은 트럼프의 성장을 브랜드 관점에서 분석한다. 1990년대 기업들은 상품 자체에서 벗어나 브랜드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고 브랜드 구축에 나섰다.
트럼프 역시 이 흐름을 타고 거대한 사업체를 건설했다. 트럼프는 브랜드가 아예 존재하지 않던 경제 부문에 브랜드를 입혔다. 사무용 고층빌딩과 아파트, 골프클럽과 휴양지에 자기 이름을 붙여 브랜드화했다. 이를 통해 트럼프는 해당 부동산을 직접 소유하지도, 지분을 소유하지도 않았는데도 자기 이름을 빌려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리얼리티 TV 프로그램 '어프렌티스' 출연은 브랜드 강화를 가속하는 계기가 됐고 대통령 선거에서 브랜드 구축은 절정을 맞았다. 만약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했더라도 대선 출마 그 자체만으로도 트럼프에게는 브랜드 사업 관점에서는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책은 브랜드 위에서 성장한 트럼프를 무너뜨릴 방법은 역설적으로 브랜드에 손상을 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트럼프라는 거대한 풍선에 바늘을 찔러넣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시작은 '내면의 트럼프' 죽이기다.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며 '탐욕은 좋은 것이다, 시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돈이다, 취약한 사람들이 곤경에 처한 것은 그 사람들 잘못이다.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자기 이익을 먼저 챙겨라' 같은 사고방식에 사람들이 너무 익숙해져 있다고 말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최상층 갑부들에게 터무니없는 면죄부를 주고 승자독식 방식의 경쟁에 혈안이 되며 모든 것에 지배자 중심 논리를 적용하는 문화를 만들어냈고 이런 문화의 논리적인 종착점이 트럼프라는 것.
저자는 트럼프가 단순히 미국의 대통령이 아닌 우리 문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인 만큼 대통령 집무실의 주인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원하는 세계를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트럼프를 만들었고 세계 각지에서 똑같은 복제 인물을 만드는 정치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바꾸려면 단순히 트럼프에 '노'(NO)'라고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우리의 내면부터 바꾸고 대담하게 다른 세상을 그리는 일에 함께할 것을 촉구한다.
"미래는 트럼프가 출현하기 전에 우리가 살던 세상이어서는 안되고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세상이어야 한다. 그 미래를 상세히 그려내려면 과거에 수많은 사회 운동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던 유토피아 전통을 되찾아야 한다. 대담하게 다른 세계를 그려야 한다"
이순희 옮김. 384쪽. 1만7천원.
zitron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