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성 교수, 베트남전 상처 치유법 숙고한 신간 펴내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베트남 중남부 해안에 빈딘이라는 지역이 있다. 빈딘을 한자로 쓰면 평정(平定). 1965년 10월 한국을 떠나온 맹호부대는 이듬해 1월 하순 나흘간 이 일대를 평정했다. 1천여 명이 죽고 집들이 불탔다. 50년이 지난 2016년 2월 이곳에서는 위령제가 열렸다. 위령비 앞에 선 사람 중에는 맹호부대 소속 정보통역장교 아버지를 베트콩 총에 잃었던 어린 딸, 노동운동가 박숙경 씨도 있었다.
전진성 부산교육대 사회교육과 교수가 쓴 '빈딘성으로 가는 길'(책세상 펴냄)은 베트남전쟁으로 얽힌 악연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베트남전 문제는 여전히 음지에 있다. 특히 민간인 학살은 대다수 사람에게 여전히 미지에 있거나, 마주 대하기 껄끄러운 영역이다.
이 문제를 더는 모른 척하거나 미룰 수 없다. 19일 여의도 국회까지 찾아온 베트남 여성들이 흘린 눈물이 이를 말한다. 한국군에게 가족을 잃은 이들은 "어째서 50년이 넘도록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박숙경 씨 가족 이야기로 시작한 책은 베트남전 성격과 한국군 파병 배경을 먼저 짚어본다. 저자는 베트남전이 외세 억압에 저항한 전쟁이었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베트남 대 베트콩 식 체제 대결 혹은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한 안보 전쟁이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베트남전 파병은 악마의 선택"이었다. 애초부터 경제 실익을 노린 국가, "가난과 싸우러 간" 병사 개개인 모두 각자 목적을 위해 내달렸다. 병사들이 악을 행하도록 부추기고 그 모든 행위를 애국으로 포장한 국가야말로 악의 축이었다. 국가는 종전 후에도 오랫동안 기억 왜곡을 주도하고 망각을 강요했으며 인간 경시 풍조를 부추겼다.
저자는 '어제의 용사들'에게 새롭게 과거를 바라보자고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피해자들인 참전군인들이 직접 베트남인들에게 사과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도와야 한다. "가해자의 자리에서 속죄하겠다는 결단이야말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악연을 끊는 유일한 길이며, 가해자가 자신의 기억과 인격을 되찾는 길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파월장병이나 가족에게는 불편할 것이 당연하다. 저자는 그래서 "피땀을 바쳐 조국을 지켜냈다는 자랑스러운 기억에서 잠시만이라도 벗어나 전혀 다른 관점에서 펼쳐내는 이야기를 인내심을 갖고 경청해 주시길 바란다"고 조심스럽게 호소했다.
출판사 소개처럼 여전히 과거를 사는 전쟁 시대 아버지들과 베트남전을 현재 사건, 우리 일로 여기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를 잇는 역할을 하는 책이다.
280쪽. 1만4천800원.
ai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