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에 가려진 한진家 탈세 제보…속 타는 관세청

입력 2018-04-21 09:31  

'익명'에 가려진 한진家 탈세 제보…속 타는 관세청
제보 쏟아지지만 '밀수 공범 될까' 우려에 조사 협조에는 난색
관세청 "조만간 정식조사 전환"…檢출신 관세청장 역할도 주목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조현민 대한항공[003490] 전무의 '물벼락 갑질'이 한진그룹 일가의 관세 포탈 의혹으로 번지고 있지만 세관 당국의 조사는 충분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혐의를 입증할만한 핵심 제보는 주로 대한항공 내부에서 나오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밀수 공범'으로 몰릴 수 있다는 우려에 선뜻 조사에 협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최근 SNS나 언론 보도를 통해 한진그룹 총수일가가 해외에서 산 물품을 무관세로 반입했다는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의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총수일가의 개인 물품을 조직적으로 회사 물품이나 항공기 부품으로 위장해 내야 할 운송료나 관세를 회피했다는 것이다.
한진그룹 일가가 사내에 자신들의 수하물 밀반입 전담팀까지 두고 범법 행위를 자행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사내 의전팀을 동원해 공항 상주직원 통로로 물품을 상습적으로 빼냈다는 제보도 줄을 잇고 있다.
이 같은 증언이 사실이라면 모두 밀수에 해당할 수 있는 범죄 행위로 5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관세액의 10배에 달하는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제보가 익명으로만 이뤄지고 있어 정작 세관 당국이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관세청은 의혹을 제기한 직원들과 전방위적으로 접촉을 시도하고 있지만 모두 신분 공개를 꺼리고 있어 조사에 난항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보자들이 쉽게 조사에 협조하지 못하는 것은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범죄 행위를 도운 '공범'으로 몰릴 수 있다는 우려 탓이라는 분석이 있다.
제보 내용대로 관세 신고 대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물품을 면세품인 것처럼 위장하거나 상주직원 통로로 면세품을 빼내는데 동원됐다면 공범으로 조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 전무의 언니인 조현아 씨의 갑질을 공개 증언했지만 피해 구제는커녕 인사 보복 논란에 시달리고 있는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의 선례가 제보자를 더 주저하게 한다는 관측도 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 보복으로부터의 보호 등이 확실히 보장되지 않는 한 용기를 내 당국의 조사에 협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박 전 사무장은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 이후 영어 능력을 이유로 팀장에서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됐다며 현재 대한항공 측과 부당징계 무효 확인 소송을 벌이고 있다.
대한항공 측은 "박 전 사무장은 징계를 받은 것이 아니라 평가를 받았을 뿐이며 불이익한 변경을 주지 않았다"며 박 전 사무장과 맞서고 있다.



관세청 조사가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검찰 출신으로 39년 만에 세관당국 수장을 맡은 김영문 관세청장의 '수사 지휘력'도 주목을 받고 있다.
김 청장이 오랜 검찰 재직 기간 축적한 수사 노하우를 통해 지금까지 경제 관료가 이끌었던 관세청이 보여주지 못했던 '수사 능력'이 발휘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김 청장은 검찰 재직 당시 대구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장, 수원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장,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장 등을 지내면서 밀수와 관련된 업무를 다수 처리한 경험이 있다.
관세청은 일단 제보자와 간접적으로나마 접촉을 시도해 최대한 협의 입증을 위한 정보를 확보하는 데 주력 중이다.
이와 동시에 한진그룹 일가의 해외 신용카드 내역 분석을 통한 혐의 규명에도 힘을 쏟고 있다.
관세청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아직 정식조사 단계가 아니다"라며 "해외 신용카드 내역 분석이 막바지에 들어선 만큼 혐의를 잡아 조만간 정식조사로 전환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roc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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