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장 폐기 北 선제조치에 국제 사회 환영…정상회담 '탄력'
남북-북미 '대담판', 한반도 포함 동북아 정세가를 외교전의 시작
여전한 北 '핵보유국' 논리에 신중론도…김정은 전략적 결단이 관건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중지에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라는 북한의 선제 조치로,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논의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북한은 21일 공개한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서를 통해 이 같은 조치를 밝혔다. 북한은 해당 결정서에서 '군축'을 언급하면서 과거처럼 핵군축 협상을 노릴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아 신중론도 나오고 있으나, 일단 한반도 비핵화 논의가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한국과 미국은 물론 중국·일본·러시아 등 과거 6자회담 당사국들이 모두 북한의 조치를 환영하고 나서면서 긍정적인 논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비핵화 협상은 북한 안전보장, 평화체제 논의를 동반할뿐더러 한반도와 그 주변의 동북아의 외교·안보 지형을 크게 바꿀 '빅 이슈'라는 점에서 그 추이에 각국이 촉각을 곤두세운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의 전기가 마련된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그 어떤 전임자도 이루지 못한 '외교적 쾌거'를 거머쥘 수 있어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전력 투구하고 있어 보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재팬 패싱(일본 배제)'을 차단하기 위해 애면글면하고 있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역시 동북아에서의 러시아 존재를 각인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일단 이달 27일 남북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5월 또는 6월 초' 북미 정상회담, 그리고 그 이후 남북미 정상회담 가능성과 시 주석의 방북을 통한 북중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향후 정세를 가를 대형 외교전이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북한의 선제 조치와 관련해 환영의 목소리가 크다는 점에서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다.
청와대는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명의로 입장문에서 "북한의 결정은 전 세계가 염원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전 세계에 매우 좋은 뉴스로 큰 진전"이라고 환영했다. 아베 총리도 "긍정적인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은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경제 발전과 인민 생활 수준 향상에 역량을 집중한다고 밝힌 데 대해 환영을 표한다"고 밝혔다. 또 러시아 외무부도 "해당 결정은 한반도 긴장의 추가적 완화와 동북아 정세 정상화와 관련한 긍정적 흐름의 공고화를 위한 중요한 행보라고 간주한다"고 했다.
문제는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핵심 의제인 비핵화 문제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느냐다.
북한은 미 국무장관 지명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방북을 통한 의견 교환 후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조치와 경제건설 총력 노선을 선언함으로써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기는 했으나, 이에 대해 미국 등 국제사회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어 추후 논의에 관심이 쏠린다.
특히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D) 원칙을 내세우며 일괄타결을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강조해온 김정은 위원장 간에 '간극'이 크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좁힐지가 차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핵·경제 병진노선 대신 경제건설 총력 노선으로 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으나, 상대인 한미 양국이 어떤 대응을 하느냐에 따라 회담의 향배가 달라질 수 있다.
일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명문화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비전을 합의문에 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첫 관문인 남북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그걸 바탕으로 북미정상회담에서 체제 안전보장·평화체제 구축이 맞물린 비핵화 논의가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그럼에도 신중론도 있다.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서에 '비핵화'가 거론되지 않았고 핵보유국 입장에서의 '핵군축' 논리로 핵실험·ICBM 발사중지에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결정을 한 듯한 기색이 역력해서다.
핵실험장 폐기 역시 북한이 이미 6차례 핵실험을 한 탓에 추가 핵실험의 필요성이 크지 않아 그런 결정을 한 것 아니냐는 신중론이 나온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 인터넷판은 21일(현지시간) 백악관 보좌진의 속내는 트럼프 대통령의 환영 입장과는 온도차가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백악관 보좌진들은 북한의 이번 발표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이 합리적이며 기꺼이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환상'(illusion)을 주기 위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약속들(modest pledges)을 제안한 것이지만, 이 약속은 바로 뒤집힐 수 있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좌진은 또 이번 발표를 통해 북한이 경제 제재의 완화를 끌어내려 하고 있다는 진단도 내놓았다고 WP는 소개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도 "북한이 이번에 밝힌 '경제건설 총력'은 결국 제재 완화로 연결되는 논리"라며 비핵화 쪽으로 북한이 움직이더라도 제재 해제의 속도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다시 핵 보유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인식이 내포돼 있다고 해석했다.
북한이 핵 대신 경제를 선택하는 전략적 결정을 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견해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른바 핵·경제 병진노선을 접고 경제건설에 올인하는 '전략적 결단'을 내린 것인지, 핵보유국 지위 하에서의 '김정은식 세계화'를 생각하고 것인지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김 위원장의 의중은 다가오는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등 계기와 함께 북한의 국내적 후속 조치를 통해 확인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의 이번 조치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며 "중요한 것은 북한 노동당 규약과 헌법에 핵보유국 명시가 되어 있는데 앞으로 그것이 살아있느냐 빠져 있느냐를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와는 달리 외교소식통은 "'톱 다운' 방식으로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협상이 큰 성과를 낸다면, 한반도와 동북아 정치·외교·안보 지형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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