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톨로뮤 토텔라 의학부 대표…"신약개발 어려움 직시해야"
오픈이노베이션으로 혈우병 유전자치료제 분야서 성과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기자 = "신약 개발이 어려운 이유는 어떤 물질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실패할 가능성을 알고도 하는 것이니 당연히 신약 개발에 매번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해 525억달러(한화 56조원)의 매출을 올린 글로벌 1위 제약사 화이자가 신약 개발에서의 불확실성을 언급했다. 유망한 바이오 기업을 발굴하고, 천문학적 연구개발(R&D) 비용을 쏟아부어도 신약 개발이 성공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에서다. 화이자는 지난해에만 R&D에 76억달러(약 8조원)를 썼다.
최근 방한한 바톨로뮤 토텔라(Bartholomew J. Tortella) 화이자 희귀질환 분야 의학부 대표는 지난 2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며 "신약 개발의 어려움을 제약사도, 환자도, 기사를 읽는 독자도 현실적으로 직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토텔라 대표의 당부는 최근 한미약품[128940]의 폐암 신약 '올리타'의 개발 중단으로 출렁였던 국내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지난 13일 한미약품이 올리타의 신약 가치 상실을 이유로 들어 개발을 중단한다고 밝히자 환자와 주주 모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한미약품이 올리타에 대한 기대를 너무 키우기도 했지만, 업계 안팎에서 신약의 '실패 가능성'을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토텔라 대표는 "임상시험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를 내놓을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화이자도 숱한 실패를 겪으며, 이를 걸림돌이 아닌 학습의 기회로 사용하는 문화가 정착됐다"고 말했다.
실제 화이자는 올해 1월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파킨슨병의 신약 개발을 중단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화이자는 2012년에도 다국적제약사 존슨앤드존슨과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제인 '바피뉴주맙'을 공동 개발하다 임상 3상 단계에서 포기한 적이 있다.
토텔라 대표는 "화이자도 치매 치료제 개발을 중단하면서 모든 질환에서 성과를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며 "실패에도 불구하고 '환자에 신약을 제공한다'는 의무는 변함없으므로 신약 개발을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신약 개발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신약 개발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오픈이노베이션'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픈이노베이션이란 기업 내부뿐 아니라 기업이나 스타트업, 학계 등 외부로부터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회사를 혁신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제약사가 유망한 신약 후보물질 발굴·개발을 위해 회사 밖의 벤처나 연구기관과 협력하는 것 등이 그 예다.
그러면서 바이오벤처 스파크와 공동으로 개발 중이 B형 혈우병 유전자치료제 성과를 예로 들었다. 화이자와 스파크는 2014년 말부터 제휴를 시작, 최소 주 2~3회 투여해야 하는 혈우병 치료제를 최소 1년에 1번만 정맥주사하도록 개선했다.
토텔라 대표는 "혈우병은 일종의 단백질인 혈액응고인자가 결핍돼 발생하는 유전질환인데, 유전자치료제는 체내 결핍된 단백질의 생성 자체를 돕는다"며 "환자가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수준의 혈액응고인자 단백질 생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 후보물질을 B형 혈우병 환자에 정맥주사해 최소 1년 이상 효과가 지속했다는 임상 중간 결과가 국제학술지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지난해 12월 보고됐다. 아직 임상시험 후 추적 기간이 남아있어 약효 지속기간은 더 길어질 수 있다.
토텔라 대표는 "임상 기간을 5년으로 잡고 2015년 12월 환자에 처음 투약한 뒤 지속해서 관찰 중"이라며 "아직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1번의 정맥주사만으로 5~10년간 효과를 지속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토텔라 대표는 이 같은 성과에는 유망한 바이오벤처를 선택한 영향이 컸다고 봤다.
그는 "화이자가 모든 질환을 단독으로 연구할 순 없다"며 "소규모 바이오벤처들은 고유의 난치성 질환에 주력하는데, 화이자가 이들과 파트너십을 맺으면 그들은 우리의 제조시설과 유통망, 신약 허가 등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전체적인 신약 개발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약 개발이 빨라질수록 환자가 혜택을 더 빨리 누릴 수 있다"며 "결국 오픈이노베이션은 환자에 신약을 더 빨리 공급할 수 있는 '환자 우선주의'를 실현하는 수단"이라고 덧붙였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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