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헝가리·체코 지원 줄이고 스페인·그리스 지원 검토
(서울=연합뉴스) 김민철 기자 = 유럽연합(EU)이 최근 정계 지도부의 권위주의적 성향이 더욱 두드러지는 폴란드, 헝가리 등 동·중부유럽 회원국에 대한 예산지원을 대폭 줄이는 대신 스페인과 그리스 등 남부 유럽국들로 지원을 전환하는 개혁 방안을 내부에서 모색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3일 보도했다.
EU가 오는 2021-2027년 예산 초안을 다음달에 공개할 예정인 가운데 FT는 미리 열람한 EU 내부 문건 등을 통해 이같이 전했다.
EU는 유럽의 결속을 강화하는 명목으로 지난 수년간 엄청난 예산을 신규 회원국에 쏟아부었으나 이제는 자금 지원을 지역 통합과 (민주주의적) 가치를 고양시키는 방향으로 원칙을 변경해 지원 대상국도 새롭게 선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지난 2014-2020년 예산을 운용하면서 새로 진입한 회원국들과 기존 회원국 간의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 '통합 정책'에 3천500억유로(약 459조원)를 책정해 자금을 지원해왔다. 이를 통해 폴란드가 이 기간 770억유로(101조원)를 배정받았으며 헝가리가 220억유로(29조원), 슬로바키아는 140억유로(18조원)를 각각 지원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통합 예산' 배정에 단지 1인당 국내총생산(GDP), 청년실업률, 교육 및 환경 여건 등을 고려하는 데서 벗어나 역내 '통합과 가치' 제고라는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에는 법치의 강화라든지 EU 자금 집행 요건을 더욱 엄격하게 하는 한편 난민과 개혁의 문제도 포함된다.
특히 이런 경향은 EU의 2021-2027년 예산 중 '통합 정책' 예산 3천500억유로(459조원)에 대한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폴란드와 체코 그리고 발트해 연안국에 배정된 자금이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심지어 프랑스 일부 지역에 돌려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최근 헝가리에서는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난민·유럽연합 반대'를 내세우며 4선에 성공했고, 폴란드에서는 지난해 말 사법부 인사권을 정부가 장악하면서 EU와 갈등을 빚었다.
이런 가운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독일이나 스웨덴처럼 난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국가들에 EU 예산을 지원하는 방안을 지지한 바 있다.
물론 이런 개혁을 놓고 회원국 간에 치열한 논쟁이 빚어질 수 있으며 일부에선 이미 경각심을 표출하고 있다.
폴란드는 EU 자금 집행과 관련해 사법부 독립 등 엄격한 요건을 연계하는 데 대해 주권 침해를 유발할 수 있다며 경고해왔다.
한편 EU는 영국의 탈퇴계획으로 인해 줄어드는 예산 규모 등을 고려해 통합 정책 예산을 5∼10%가량 삭감하는 게 필요하다는 태도를 보여 이래저래 '통합 예산'을 둘러싼 다툼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minch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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