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영변핵시설 동결 언급 없어…문 대통령, 동결 '첫 단추'로 인식한 듯
문 대통령, '핵 동결→폐기' 2단계론 주창…남북합의 수준 기대감 높여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와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 발표를 핵 폐기 과정의 '입구'로 여겨지는 '핵 동결'로 규정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이 본격화할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이 비핵화를 향한 첫 단계가 핵 동결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던 만큼 남북정상회담과 이어지는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보다 실효성 있는 조치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치를 한 단계 높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선언을 북한의 성의 있는 조치로 높이 평가한다"며 "북한의 핵 동결 조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중대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북한의 '선(先) 조치' 발표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으로, 특히 북한의 선행 조치를 핵 동결로 규정한 것은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의미 있는 '시그널'로 해석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핵 동결을 '입구'로 하고 핵 폐기를 '출구'로 하는 '2단계 해법'을 일관되게 제시해 왔다.
그러나 북한은 작년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 등 도발을 멈추지 않았고, 문 대통령의 2단계 해법론에 대한 회의론마저 불거진 게 사실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대북특사였던 민주평화당 박지원·정동영 의원은 지난달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한 대북특사단이 방북할 때 "북한이 핵 동결을 시사하기만 해도 성과"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언급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점을 재확인함과 동시에 핵 폐기 과정으로 돌입할 상황이 조성됐다는 자체 평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핵 동결을 핵 폐기 과정의 입구로 본다면, 북한의 선제 조치 발표는 핵 동결의 '첫 단추'가 될 수 있다는 게 문 대통령의 인식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우리 정부는 물론 미국과의 심도 있는 '사전 논의'를 진행하는 와중에 '선제 조치'를 발표했다는 측면에서 문 대통령이 북한의 발표를 핵 동결로 '자신 있게' 규정할만한 모종의 '추가 정보'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북한이 문 대통령의 2단계 해법 중 핵 동결에 핵실험장 폐기 등으로 화답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이에 문 대통령이 핵 동결이라고 의미 부여하면서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 관련 합의 수준이 자연스레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북한 조치를 두고 "남북·북미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청신호"라면서도 "북한이 핵 동결로부터 출발해 완전한 핵 폐기 길로 가면 북한의 밝은 미래가 보장될 수 있다"고 한 것은 북미를 향한 희망 메시지로도 읽힌다.
북한 비핵화가 가시화할 수 있는 조건이 조금씩 마련되는 상황에서 비핵화의 '입구'와 '출구' 사이에는 정교한 단계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여야 대표 초청 간담회에서 "비핵화 입구는 동결이고 출구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막연한 방법을 제시했지만, 앞으로 필요한 것은 더욱 구체적이 협의"라고 언급한 바 있다.
물론 문 대통령이 북한의 이번 조치를 '핵 동결'로 규정하긴 했지만 성급한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엄존한다.
북한이 핵무기 생산의 아이콘으로 일컬어지는 영변 핵시설에 대한 동결 여부에 대해서는 일절 밝히지 않은 만큼 북한의 이번 조치 발표를 핵 동결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게 그 논거로 제시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22일(현지시간) 트위터에 "결론까지는 먼 길이 남았다"고 올렸다. 북한의 발표에도 여전히 '낙관론'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적어도 핵 동결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을 받아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kj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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