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꽉 막힌 중부전선도 열렸으면"…'냉전의 현장' 철원

입력 2018-04-24 08:57   수정 2018-04-24 09:10

[르포] "꽉 막힌 중부전선도 열렸으면"…'냉전의 현장' 철원
농민단체, 정상회담 환영 '우리는 하나다' 현수막 걸어
주민들 "철원에 평화공단 만들고 통일한국 행정수도 꿈"

(철원=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주민들이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는 것부터 풀어줬으면 좋겠어요."
남북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24일 강원 철원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의 고향을 바라보고 사는 실향민 이근회(78) 철원 미래전략기획위원회 위원장의 감회는 남달랐다.

그의 고향은 남쪽에서도 보이는 북한의 고암산 자락이다.
이 회장은 일제 강점기 때 북측 철원군 북면에서 초등학교에 다니고 북한 체제에서 중학교 2학년을 다녔다.
6·25전쟁이 발발해 피난을 나온 그는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녔고 공직 생활을 했다.
그가 전쟁 때문에 떠난 고향 마을은 비무장지대(DMZ)에 가로막혀 이제는 갈 수 없는 금단의 땅이 됐다.
함께 피난길에 올랐던 고향 사람들은 전국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대부분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자신이 사는 철원을 '살아 있는 냉전의 박물관'이라고 부르는 그이기에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거는 기대감은 여느 때보다 크다.
그는 6·25전쟁 이후 한 번도 남북을 이어주는 길이 열린 적이 없는 중부전선 철원에도 정상회담을 통해 단절된 철로와 육로가 다시 열리기를 희망했다.
그는 고암산에서 멀지 않은 철원 대마리 일원에 평화산업단지를 조성하자는 뜻을 주민과 함께 모으고 있다.
개성에 남측이 조성한 공단이 중단된 사태를 보고, 철원에는 북한의 근로자가 남측으로 출퇴근하는 평화산업단지를 만들자는 구상이다.
평화 산단에 필요한 근로자는 단절된 경원선과 금강산 전철을 이으면 출퇴근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철원에서 26대째 사는 그는 과거 교통의 요지였던 철원이 미래 통일 한국의 행정 수도가 됐으면 하는 꿈을 요즘 조심스럽게 꾸고 있다.
이 회장은 "이번에는 전의 정상회담보다 상당히 기대된다"면서 "남북 관계자들이 무비자로 남북한이 서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그런 쉬운 것부터 풀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또 "현재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에는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있는데 앞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녀야 하는 휴전선의 중간인 철원에는 아직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없다"며 "이번에는 아직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는 중부전선이 열렸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철원농민회는 거리 곳곳에 환영 현수막을 내걸었다.
지난겨울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정상회담까지 열린 것을 환영하기 위해서다.

김용빈 철원군 농민회장은 "그동안 우리 철원은 분단 때문에 너무 힘들게 지내왔다"면서 "이번의 좋은 기회에 남북이 화해의 분위기, 통일의 얘기를 많이 하고 오라고 성원의 마음을 담아서 현수막을 걸게 됐다"라고 밝혔다.
남북 관계가 악화하면서 숨죽여오던 철원군도 교류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철원군은 평화산업단지 조성, 태봉국 도성 남북 공동 발굴 등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현안을 다시 살펴보고 있다.
철원군은 평화 산단 용지는 현재 대부분 국공유지이기 때문에 남북 간 합의만 이뤄지면 매입은 어렵지 않으리라고 전망했다.
여기에다 2015년 8월 박근혜 대통령 때 첫 삽을 떴다가 이후 슬그머니 중단된 경원선 남측 구간 철도 복원 공사도 다시 추진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과거 철원을 기반으로 일어났던 태봉국의 도성은 남북이 대치하는 비무장지대에 갇혀 있어 공동 발굴 대상이다.
철원군 관계자는 "한반도 정세가 최근 급변하고 있어 민간과 지방자치단체가 나름대로 대비하고 있다"며 "경원선 복원 공사도 최근 철로 편입 용지에 대한 경작을 금지해달라고 정부가 요구한 만큼 올해 안에 움직임이 있을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dmz@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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