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부커 수상작 다비드 그로스만 장편소설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지난해 영국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인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문학동네)가 출간됐다.
맨부커 상은 재작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에 널리 알려진 문학상이다. 영미권에서 노벨문학상 못지않은 권위를 자랑한다.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는 이스라엘 문학 거장 다비드 그로스만의 장편소설. 2014년 이스라엘에서 처음 출간돼 히브리어 전문 번역가인 제시카 코언 번역으로 2016년 영미권에 출간됐다. 한국어 번역은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정영목 교수가 영역본을 바탕으로 삼았다.
그로스만은 전작 '땅끝에서', '시간 밖으로' 등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작가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수차례 거론되기도 했다. 그는 이스라엘 정부의 팔레스타인 점령 정책을 줄곧 비판하며 평화운동가로 활동했다. 그의 작품에는 자연히 이런 사회·역사의식이 깊이 반영돼 있다.
이번 소설도 그런 묵직한 작품세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형식이 독특하다. 한 편의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안에 비극적인 이야기를 띄엄띄엄 펼쳐 보이며 독자와 노련하게 '밀당'을 한다. 소설 주인공인 57세 코미디언 '도발레'는 두 시간 분량의 공연으로 관객을 웃기고 울리며 들었다 놨다 하는데, 이 과정을 소설을 읽는 독자가 고스란히 따라가게 된다.
도발레 공연은 질펀한 농담으로 시작한다. 비속어와 욕설, 야설이 난무한다. 그러나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회 부조리를 꼬집는 날카로운 풍자가 녹아있다. 이 부분에서는 이스라엘 사회, 문화를 잘 모르는 한국 독자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초반에는 내용을 이해하고 따라가는 데 다소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점은 소설의 화자이자 관찰자인 '아비샤이'라는 인물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는 지방법원 판사로 일하다 얼마 전 은퇴한 상태. 어린 시절 도발레와 과외 수업에서 우연히 만나 짧은 기간 우정을 나눴지만, 수십년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며칠 전 난데없는 전화를 받았다.
도발레는 아비샤이에게 자신의 공연을 봐주고 그가 본 것을 짤막하게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주저하던 그는 결국 이를 받아들여 공연에 왔다. 도발레는 왜 그런 부탁을 했을까.
소설 중후반부는 농담이 섞이긴 하지만, 대체로 도발레의 어린 시절 비극을 그린다. 그는 이발사인 아버지에게 혁대로 수없이 맞고 자랐다. 어머니는 폴란드 출신으로 홀로코스트에서 어렵게 살아남았으나, 수개월간 좁은 기차간에 은신하며 갇혀 지낸 기억으로 우울증을 앓고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어두운 가정환경에 몸집도 왜소했던 도발레는 학교에서도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다.
이어 도발레가 학교에서 아이들의 전쟁 대비 훈련을 위해 보내는 캠프에 간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아비샤이는 그 캠프에서 우연히 도발레를 만난 일, 같은 텐트에 합숙하며 덩치 큰 아이들이 도발레에게 가혹 행위를 하는 것을 봤으면서도 모른 척했던 일을 떠올리며 심한 죄책감을 느낀다. 그 캠프에서 도발레는 갑자기 군 간부에게 불려가는데, 아무도 그 이유를 궁금해하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도발레는 당시 군인들이 정확한 이유를 말해주지 않은 채 자신을 운전병이 모는 군용차에 실어 집으로 돌려보냈으며, 그 차를 타고 오는 십여 시간 동안 자신에게 닥친 감당키 어려운 불행을 짐작하면서 얼마나 머리가 터질 듯 괴로웠는지 이야기한다.
이 소설은 한 인간의 평생을 지배한 고통의 근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개인의 비극에는 홀로코스트라는 유대인의 거대한 고통의 역사와 아이들까지 전쟁 훈련에 동원해 군사 문화를 이식하는 이스라엘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이 녹아있다.
324쪽. 1만3천800원.
min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