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 않다"…중공군 막아내며 산화한 터키 청년장교의 편지

입력 2018-04-2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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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 않다"…중공군 막아내며 산화한 터키 청년장교의 편지
경기도 연천서 순국한 귀넨츠 중위 서신 67년만에 터키언론에 공개
"포로되기 원치 않는다"며 아군 위해 희생…한국정부 2012년 '6·25 영웅' 선정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오늘 많은 친구들이 한국 산중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그들 중 어느 한 사람도 마지막 숨을 내쉴 때 결코 슬퍼하지 않았다."
6·25 전쟁에서 아군의 승리를 위해 장렬히 산화한 터키군 청년 장교의 편지가 67년만에 터키 언론에 공개됐다.
주인공은 1951년 4월 22일 경기도 연천군에서 중공군과 전투 중 영웅적인 죽음을 맞은 터키군 1여단 메흐메트 귀넨츠(Mehmet Gunenc, 한국 국가보훈처는 '메흐멧 고넨츠'로 표기) 중위다.
당시 중공군은 참전 이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이 된 공세에 최대 병력을 동원해 연합국을 압박했다.
적군의 위협적 공세에 막대한 피해를 당한 터키군 부대의 전방 포병관측장교였던 귀넨츠 중위는 본부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적군은 우리 중대가 주둔한 언덕을 점령했다. 부대원 다수가 교전 중에 사망했고, 무전병도 전사했다. 내가 집중 발포 좌표를 주겠다."
귀넨츠 중위가 연대본부에 넘긴 좌표는 바로 자신이 위치한 곳이었다.
본부 포병연락장교가 '그 곳은 당신 중대가 있는 곳이니 안 된다'며 다시 확인했지만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포로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아군 총에 죽는 것이 우리의 마지막 유언이자 바람이다. 정확한 좌표를 다시 주겠다. 모든 포병부대는 이곳으로 발포해야 한다."
이후 얼마 안 있어 교신이 끊어졌다.
중공군의 남하를 막아야 했던 터키군은 논의 끝에 결단을 내려 귀넨츠 중위가 준 좌표로 집중 포격을 했다.
귀넨츠 중위와 동료들은 자신들의 목숨으로 중공군을 막아내며 임무를 완수했다.
한국정부는 그의 숭고한 희생과 무공을 기리고자 2014년 5월 귀넨츠 중위를 '이달의 6·25 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했다.

귀넨츠 중위의 조카는 귀넨츠 중위가 고향 발르케시르주(州) 반드르마의 지인 에디프 월칸(90)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유품으로 보관해오다 최근 언론에 공개했고, 취재진은 월칸씨를 만나 그 편지를 보여줬다.
월칸씨는 67년 만에 자신과 귀넨츠 중위가 주고받은 서신을 다시 읽으며 감동에 젖었다.
23일 터키 일간 휘리예트가 소개한 26세 터키군 장교의 편지(1951년 1월 23일자)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에디프, 믿기 힘들겠지만 이런 것은 조국에서 멀리 떨어져 봐야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지금 여기 있는 터키군 4천500명의 심장은 '와탄, 와탄('조국'이라는 뜻)'하며 박동한다. 우리의 모든 것이 거기 조국에 있고, 우리만 여기 떨어져 있기 때문이야.
이런 모든 상황에도 유일한 위안은 우리가 터키 후손에 부끄럽지 않게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것이지. 그날은 반드시 온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만이 그 위대한 날을 볼 수 있겠지.
오늘 많은 친구들이 한국 산중에서 영원히 잠들었어. 아침에 같은 방에서 웃으며 일어나서 서로 장난을 치던 친구들이 저녁에 돌아오지 않았지. 그 중에 한 사람도 마지막 숨을 거두며 슬퍼하지 않았어. 아마도 그들의 마지막 말은 '아, 나의 조국'이었을 거다."
tr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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