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논의, 최우선…北최고지도자 '의지' 첫 명문화 추진
큰 틀 합의만 해도 성과…트럼프-김정은 담판 '길잡이' 기대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다뤄질 가장 중요한 의제는 한반도 비핵화다.
남북 정상이 비핵화에 대해 어떤 논의를 하고 합의문에 어떻게 반영되느냐가 회담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사적 긴장완화를 포함한 항구적 평화정착,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 등 다른 의제들도 있지만 비핵화에서 진전이 없다면 나머지 의제들에서도 의미 있는 논의를 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통일부 고위당국자가 지난 24일 기자간담회에서 "비핵화 진전 없이 평화정착이 (앞으로) 나아간다든가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밝힌 것도 비핵화를 최우선으로 논의할 것임을 재확인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의 비핵화 논의는 '5월 또는 6월 초'로 예상되는 북미정상회담의 밑그림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더한다. 일단 회담을 앞두고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직·간접적으로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고 있어서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초 문 대통령 특사단과의 만남, 지난달 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이달 초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지명자와의 회동 등에서 '조건만 맞는다면 비핵화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은 또 20일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중단하는 조치를 결정했는데,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진정성을 보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이런 긍정적인 분위기가 이어져 최소한 비핵화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는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문 대통령 특사단이 평양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뒤 돌아와 전한 내용이 이번 남북 정상 간 논의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언론발표문에는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였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다'고 돼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의지를 직접 밝히고 관련 사항이 합의문에 명시된다면, 이것만으로도 전례 없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직접 서명한 문서에 비핵화 의지가 담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1992년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남북한 총리가 서명했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는 '남북은 한반도 핵 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공동성명과 2·13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고만 돼 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시한이나 상응 조치 등 세부적인 사항들이 더 논의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이 비핵화의 반대급부로 원하는 '군사위협 해소'와 '체제안전 보장'이 우리보다는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사안들이어서다.
일각에선 예상을 뛰어넘는 과감성을 종종 드러내 온 김 위원장이 핵 사찰 수용, 주한미군 주둔 용인 등의 발언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합의문에까지 담기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무리하지 않고 비핵화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하는 데 집중해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끌어내기 위한 길잡이 역할만 해도 성공적이라는 관측이 많다.
한편 비핵화가 남북 정상 차원에서 제대로 논의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북한은 비핵화를 미국과 논의할 사안으로 여겼고, 우리도 굳이 껄끄러운 이슈를 대화 테이블에 올리려고 고집하지 않았다.
북핵 문제의 심각성이 지금처럼 두드러지지도 않았던데다 2000년 정상회담 때는 북·미 제네바 합의로 북핵 문제가 봉합된 상황이었고, 2007년 정상회담 때는 6자회담에서 북핵 문제가 논의되고 있었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지금은 무섭게 고도화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외면하고는 어떤 논의도 무의미한 상황이 됐고, 우리 정부도 '북핵 문제 해결의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회담을 준비하고 있다.
transi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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