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기업 조치…과학계·전 EPA 관리 "공중보건 권한 훼손"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투명성 강화를 명분으로 비밀자료에 근거한 연구는 규제에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스콧 프루잇 EPA 청장은 24일(현지시간) 농약이나 공해 등을 비롯한 각종 규제는 일반에 공개할 수 있는 자료에 근거한 과학적 연구만 활용하도록 한 조치에 서명했다. 이는 화학업체와 화석연료 사용 기업들이 요구해 온 것이기도 하다.
기업에 부담되는 규제를 완화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수행해 온 프루잇 청장은 "EPA가 비밀자료에 근거한 과학연구에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학연구의 결과를 검증하고 재확인하는 것은 규제 결정 과정의 완결성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며, 미국인은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EPA 결정의 근거가 되는 과학적 연구의 타당성을 평가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학자와 EPA 전직 관리들은 이번 조치로 비밀자료에 근거한 연구를 토대로 공중보건을 강화할 수 있는 EPA의 권한이 훼손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환자정보보호법에 따라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개인 의료기록을 활용한 공중보건 연구는 EPA의 규제 정책에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지난 1993년 하버드 공공보건대학원이 6개 주요 도시의 대기 오염과 사망률의 관계를 규명한 연구결과를 내고 EPA가 이를 근거로 대기오염 규제를 강화했지만, 앞으로는 이런 규제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과학자료 공개와 투명성 강화를 주창해온 '열린과학센터'(Center for Open Science)의 브라이언 노섹 소장은 "이 정책은 과학을 향상하는 원칙인 투명성을 오히려 과학을 약화하는 무기로 바꿔버렸다"고 비난했다.
업계는 EPA가 비밀 연구결과를 토대로 규제하는 것은 비밀리에 법을 제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업계로서는 큰 비용이 드는 EPA 규제에 근거가 되는 과학적 연구 결과물에 대한 검토를 부당하게 막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업계는 일반에 공개할 수 없는 자료라면 규제의 근거로 활용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조치가 30일간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확정되면 프루잇 청장이 취한 또 하나의 친기업적 조치가 된다.
프루잇 청장은 앞서 EPA 자문위원회 과학자들을 관련업계 직원이나 기업의 재정지원을 받아 연구를 진행하는 인사로 대체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각종 비위 의혹에다 최근에는 수백만 달러의 공금을 경호비용으로 사용해 구설에 오른 그는 이날 EPA 청사에서 비밀연구 금지안에서 서명하면서 웹사이트를 통해 생중계했지만 언론에는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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