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회가 이 모양인 이유는…소설 '청년의인당'

입력 2018-04-26 06:03   수정 2018-04-26 09:04

우리 국회가 이 모양인 이유는…소설 '청년의인당'
최태욱 교수 "시민들 공감하는 선거제도 개혁, 쉬운 이야기로 써봤죠"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비정규직 노동자, 소상공인, 청년이 우리 국민의 70∼80%,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데, 국민의 선거로 구성된 우리 국회에 왜 이들을 대표하는 정당이 없을까요? 영남당, 호남당은 있는 것 같은데요. 그 얘기를 시민들에게 쉽게 전하고 싶어서 소설을 쓰게 됐습니다."
소설 '청년의인당'(책세상)을 출간한 최태욱(57) 한림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25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 소설을 쓴 배경을 이렇게 밝혔다.
"제 얘기는 특별히 혁명적 주장도 아니고 대의제 민주주의를 제대로 작동케 하라는 거예요. 그러려면 대표를 바로 뽑으라는 거죠. 선거제도를 고치면 대표를 제대로 뽑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민의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다는 겁니다. 핵심은 그래서 선거제도 개혁이에요."
최 교수는 선진국으로 꼽히는 유럽 복지국가들이 우리와 다른 선거제도로 대의제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독일 등이 모두 오래 전부터 정당 득표율이 정확히 의석수로 연결되는 비례대표제를 실행해왔다는 것이다. 우리 현행 선거제도는 정당 득표율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각 선거구에서 1등을 차지한 후보만 국회의원으로 뽑히고 나머지 득표율은 거의 버려진다. 비례대표가 있긴 하지만 그 수가 적다.
"전국 유권자 10%가 어떤 정당을 찍으면 그만큼 의석을 주는 게 마땅합니다. 2004년부터 민주노동당(현재 정의당)이 총선 때마다 평균 10% 정도 득표했으니, 유럽 같으면 국회에서 30석 정도 가졌어야 해요. 우리 국회에서 20석이면 원내교섭단체니까 30석이면 강력한 정당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민노당-정의당은 15년 역사에도 그렇게 되지 못했어요. 비례성이 보장 안 되는 선거제도라 그렇습니다. 1등만 뽑는 제도가 지역주의와 결합돼 호남당, 영남당으로 나뉘어온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최 교수가 이런 얘기를 해온 지도 어언 10여년이다. 정치경제학자로서 많은 대중 강연에 참여해 시민들에게 이야기하면 거의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정치권에도 수없이 제안하고 상당 부분 동의도 얻었다. 그러나 결국 기득권을 지닌 정치인들의 이해관계 앞에서 제도 개혁은 번번이 물거품이 됐다.



"2010년부터 선거제도 개혁에 공감하는 학자, 시민단체 대표, 법조인, 언론인 등을 모아 연구단체를 만들고 꽤 열심히 활동했어요. 그러다 시민들이 개혁 필요성을 느끼도록 하자는 생각으로 '비례민주주의연대'라는 단체를 공식 등록하고 본격 사회운동을 했는데, 별 효과가 없었어요. 대선후보들을 찾아가 설득하고 선거제도 개혁을 공약에 넣도록 하면서 노력했는데, 거대 양당이 결국 묵살했죠. 아무리 공론화하고 당론으로 채택한다 하더라도 의원들 내심은 거의 반대예요. 특히 2015년에 국회 정치개혁특위를 만들어 정의당과 함께 밀어붙였고, 이듬해 총선 전에 개혁한다는 목표로 뭐가 될 것 같았는데, 결국 정치개혁특위가 오히려 비례대표를 줄이는 개악을 하고 끝났죠."
그는 "10여년 공들인 게 도로아미타불이 됐는데, 결국 정치권에 맡길 사안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며 "2016년 총선이 끝나고 나서 소설 쓸 결심을 하고 그 해 7월부터 매일 아침 다섯 시간을 할애해 13개월 만에 초고를 완성했다"고 했다.
소설에는 학자로서 능력과 지혜를 겸비한 교수 '한석'과 강력한 추진력을 지닌 활동가 '최드림', 스타 방송기자에서 정치인으로 거듭나는 '이혜리' 등 인물이 등장한다. 한석은 선거제도 개혁안을 설계해 사람들을 모으고, 최드림은 이를 실행해 바람직한 정치를 펼치며, 이혜리 역시 합리적인 현실 감각으로 보수 진영을 규합해 개혁을 돕는다.
최드림이 이끄는 '청년의인당'은 사회적 자유주의와 복지국가를 이념으로 청년세대를 비롯한 약자 집단을 대표하는 정당. 창당 7개월 후 치러진 총선에서 전국 득표율 20.3%를 거두지만, 겨우 12석밖에 얻지 못한다. 대규모 청년봉기 이후 대통령이 된 최드림은 300명의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시민의회'를 통해 선거제도 개혁안을 도출하고 국회 공개투표로 비례대표제를 통과시킨다. 이후 대한민국은 약자의 정치적 대표성이 보장되고, 다당제 구조와 분권형 대통령제가 결합된 합의제 민주주의를 실현하며 복지국가의 길을 걷게 된다.
"한국 정도 경제수준이면 충분히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같은 나라들도 우리보다 부(富)가 적을 때 복지국가 기틀을 만들었어요. 지금 문제는 우리가 못 살아서가 아니라, 돈은 있는데 약자에게 잘 안 가고 있는 것이잖아요. 우리 사회에 약자들이 대다수이고, 그들이 원하는 바가 정치로 이뤄져야 하는데, 87년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나도 이 모양이죠. 문제는 정치입니다. 이제는 정말 시민들이 대의 민주주의를 막는 이런 불합리한 제도에 화를 냈으면 합니다."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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