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대응팀 '가짜뉴스' 모아 공개하자 일부 매체서 반발, 제소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기자 = 세계 각국이 '가짜뉴스와의 전쟁'에 나섰지만, 그 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진실과 거짓은 물론 허위정보와 반대의견 사이의 경계선을 명확히 그리기 쉽지 않아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 불리한 뉴스를 가짜로 치부하는 등 이해관계에 따라 진위 판단이 엇갈리는 경우가 잦은 가운데 국가기관이 가짜뉴스를 솎아내는 '심판자'로 나서는 것이 적절한지도 논란이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25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이 러시아발 가짜뉴스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이 같은 딜레마를 소개했다.
EU 대외관계청(EEAS)의 허위정보 대응팀인 '이스트 스트랫컴'은 러시아가 서방의 정치 논의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판단되는 3천800개 기사를 모아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했다.
그러나 지난달 EU의 정책에 반하는 내용을 다루거나 유럽의 주류가 아닌 인물을 인용해 가짜뉴스 유포처로 찍혔다고 주장하는 네덜란드 일부 뉴스매체의 반발에 부닥쳤다.
이 대응팀은 네덜란드 3개 매체가 러시아가 제기한 우크라이나의 부패와 파시즘에 대한 어두운 시각을 조장했다고 지적했다.
그 사례로 "우크라이나는 독립 매체가 없는 올리가르히(과두정치) 국가다", "2차 세계대전 때 폴란드계 유대인 수천 명을 죽인 저항군이 아직도 존경받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포스트 온라인'의 한 기사를 들었다. 실제 이 기사는 우크라이나에서 활동한 한 언론인의 강연을 요약한 것이다.
포스트 온라인의 베르트 브루센 편집장은 EU가 친우크라이나 정책을 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싫어해 자사 기사가 표적이 됐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어를 모르는 외국인이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네덜란드어로 기고문을 쓰는 과정에서 조롱 조의 표현 등 의도하지 않은 문장이 들어간 것도 허위정보로 분류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스트 온라인 등 문제가 된 3개 매체는 사전 이의제기 수단이 없었다고 비난하며 EU 허위정보 대응팀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러자 EU 측은 논란이 된 기사들을 자체 데이터베이스에서 삭제했다.
마야 코치얀치치 외교·안보정책 담당 대변인은 이들 매체의 주장에 일부 수긍하면서도 "대응팀은 매우 투명하게 일을 했다"며 "표현과 연설의 자유에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정가에선 EU의 이런 가짜뉴스 대응 활동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네덜란드 의회에서는 내무장관을 EU로 보내 EU 허위정보 대응팀에 대한 자금 지원을 끊도록 하자는 발의안이 여야 의원들의 폭넓은 지지로 통과됐다.
하지만 허위대응팀은 여전히 EU의 지지를 받고 있다. 앞서 EU 28개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이 팀의 예산을 150만 달러(16억 원) 증액하기로 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라스무스 클라이스 닐손 조사국장은 이번 네덜란드 매체의 기사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 "공공기관이 진실의 심판자를 자청할 경우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한 잠재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인지를 상기시켜줬다"고 말했다.
HEC파리 경영대학원의 알베르토 알레만노 법학교수는 "허위정보 대응팀이 독자와 청취자의 자기 결정권과 충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ms123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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