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500여명 참여…베를린 시장 등 정치인들 참석해 연대감 표시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베를린에서 수천 명이 유대교 전통모자인 키파를 쓰고 반(反)유대주의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였다.
26일(현지시간)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에 따르면 전날 밤 열린 시위에는 2천500여 명의 베를린 시민들이 참석했다. 유대인에 연대감을 보내기 위한 '베를린은 키파를 착용한다'는 이벤트의 일환이었다.
한 유대인 단체 지도자인 기디온 요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렇게 동시에 많은 사람이 키파를 쓴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유대인 단체는 최근 시리아 난민 출신의 19세 청년이 키파를 쓴 21세의 유대인을 혁대 등으로 공격한 모습이 영상으로 공개돼 파문이 일어난 뒤 시민들에게 유대인에 연대감을 보내줄 것을 요청해왔다.
이날 시위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가 참여했다.
손주들을 데리고 참석한 64세의 여성은 "14세 때 학교에서 선생님이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밤과 안개'를 보여줬다"면서 "그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시위에는 정치인들도 대거 참석했다.
미카엘 뮐러 베를린 시장과 기독민주당의 폴커 카우더 원내대표, 쳄 외츠데미어 전 녹색당 공동 대표 등이 연단 위에 올라 반유대주의를 비판했다.
극우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측도 '유대인 보호-이슬람화 중단'이라는 포스터를 들고 시위에 참여했지만 연단에 초청받지 못했다.
이날 시위의 목소리와는 달리 독일의 유대인 주류사회 측에선 안전을 위해 키파 착용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는 게 독일의 현실이다.
요제프 슈스터 독일 유대인중앙협의회 회장은 최근 베를린 공영 라디오 방송에 "명백히 상징을 드러내는 게 원칙적으로 (반유대주의에 대항하는) 옳은 방법이지만, 독일 대도시에서 개인이 공개적으로 키파를 착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최근 이슬람계 난민이 증가하고 미국이 이스라엘의 자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키로 한 뒤 반유대주의 정서가 강해지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난 22일 이스라엘 방송 '채널 10'에 출연해 "우리는 불행하게도 반유대주의를 안고 독일에 온 많은 아랍 출신 난민이 있다는 새로운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기승을 부리는 반유대주의 현상의 배경에는 이슬람계 난민이 급증한 측면이 자리잡고 있다고 인정했다.
각급 학교에서 유대인 학생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잦아지자, 기민당 측은 각급 학교에서 벌어지는 반유대주의 행태가 정부에 의무적으로 보고돼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또한, 독일 정부는 반유대주의 커미셔너직을 신설해 책임자를 임명하는 등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통일 이전만해도 유대인 인구가 3만 명에 불과했으나 이후 급증해 20만여 명에 달한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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