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에 北으로 '월경' 깜짝 제안…의장대 앞에선 굳은 표정 역력
회담장에서 평양냉면 언급할 땐 넉살로 주변의 폭소 유도
(고양·서울=연합뉴스) 조준형 이상현 기자 = 27일 생중계된 2018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5천만 우리 국민에 사실상 첫선을 보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얼굴'은 다양했다.
올해 한반도 정세 변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피도 눈물도 없는 철권통치자의 인상으로 각인됐던 그는 이날 때로 솔직·대담했고, 때로 긴장한 듯했으며, 어떤 때는 여유와 유머를 보였다.
이날 오전 북측 판문각에서 나올 때 화면에 비친 김 위원장은 '위엄'을 강조하려는 듯했다. 족히 10여 명은 되어 보이는 근접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아가며 공식 수행원단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걸어 내려왔다. 잠시 후 뒤따르던 공식 수행원단이 다른 통로를 이용하고자 비켜섰고, 김 위원장 혼자 판문점 군사분계선(MDL) 쪽으로 다가왔다.
김 위원장은 MDL 상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처음 대면했을 때는 '과감'하고 '대담'했다.
MDL 앞에서 기다리던 문 대통령에게 활짝 웃으며 다가온 김 위원장은 MDL을 사이에 두고 1차로 악수를 한 뒤 남측으로 넘어와 다시 악수하며 카메라를 보며 포즈를 취했다.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열리는 회담을 위해 자신이 MDL을 넘어온 장면을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로 보였다. 두 정상은 북쪽을 보고 북측 취재진에게 먼저 촬영기회를 준 뒤 몸을 돌려 남측 취재진 앞에서 악수했다.
정상적이라면 거기서 첫 포토 세션은 끝나야 했지만, 김 위원장은 갑자기 문 대통령에게 MDL 북측에서 다시 한 번 악수하는 장면을 연출하자고 제안했고, 나란히 군사분계선을 넘어가 다시 한 번 악수했다.
남북 정상이 폭 50㎝, 높이 5㎝의 콘크리트 시설물로 된 분단의 선을 함께 넘나드는 상징적이고 역사적인 '깜짝 퍼포먼스'가 김 위원장의 제안으로 성사되자 지켜보던 남북한 수행원들 사이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의 동작은 거침없고 자연스러웠다.
두 정상이 연출한 이 장면을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자세히 설명했다.
윤 수석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은)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느냐"라고 하자, 김 위원장이 MDL을 넘어온 뒤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라며 문 대통령의 손을 이끌어 분단의 선 북쪽으로 넘어가면서 시나리오에 없던 장면이 즉흥적으로 연출됐다.
또 문 대통령의 우회적인 '방남 초청' 발언에 흔쾌히 화답한 대목에서도 김 위원장의 대담성을 읽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전통의장대 행사가 약식으로 치러졌다면서 "청와대에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말하자, 김 위원장은 "아 그런가요, 대통령께서 초청해주시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다"고 화답한 것이다.
북측의 열악한 교통 인프라를 스스로 거론하는 '솔직함'도 보였다.
김 위원장은 평창동계올림픽때 다녀간 북측 인사들에게서 들은 고속열차의 우수성을 언급하며 "(만약 문 대통령이) 남측의 이런 환경에 있다가 북에 오면 참으로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 우리도 준비해서 대통령이 오시면 편히 모실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고 윤 수석은 전했다.
화동으로부터 꽃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을 때 김 위원장은 화동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 북측 수행원들을 문 대통령에게 소개한 뒤 발걸음을 옮기다가 다시 수행원들이 도열한 자리로 돌아와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과정에서도 적극적인 행동으로 주변 일행을 끌어모으며 분위기를 주도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군 의장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김 위원장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군악대의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긴장된 표정으로 레드카펫을 걷던 김 위원장은 판문점 광장에서 의장대 사열을 기다리는 동안 거수경례를 하는 문 대통령 옆에서 굳은 표정으로 부동자세를 취했다. 법적으로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남측 군인들 앞에 선 상황을 철저히 의식하는 듯했다.
김 위원장은 첫 방남에 대한 긴장감을 풀려는 듯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유머도 곁들였다.
김 위원장은 이날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져왔다"면서 "대통령께서 편한 맘으로, 평양냉면, 멀리서 온, 멀다고 말하면 안 되겠구나, 좀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해 주변의 웃음을 끌어냈다.
일반적으로 주요 회담의 모두발언이 다양한 함의를 담아 미리 구체적으로 짜이는 것을 고려하면 이런 화법은 다소 이례적이다. 이는 김 위원장이 만찬 음식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즉흥적인 표현을 섞어 여유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jhcho@yna.co.kr,hapy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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