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목소리] "주말은 가족과 함께"…기대 부푼 中企 직장인들

입력 2018-04-30 07:01  

[현장목소리] "주말은 가족과 함께"…기대 부푼 中企 직장인들
"일감 집에 가져가기 일상화"·"일자리 아예 없어지면 어쩌죠?" 우려도 커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주당 법정 근로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되면서 건물 인테리어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한중(38·가명)씨는 지금 여자친구와 결혼할 결심을 굳혔다.
그가 결혼을 주저했던 여러 이유 중 하나는 현장과 사무실을 오가며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지금의 근로환경 속에서는 가족에 떳떳한 아버지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결혼하면 사정상 맞벌이 생활을 해야 하기에 홀어머니께 온종일 육아 부담을 지우는 '불효'를 하기 싫은 마음도 있었다.
먼저 결혼한 또래 친구들이 주말에만 아이와 놀 시간을 낼 수 있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이씨는 '저럴 거면 뭐하러 결혼하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거의 매주 했던 주말 근무가 없어질 것 같고, 길게는 오후 10시쯤까지 이어졌던 평일 근무시간도 많이 줄지 않을까 싶다"고 예상하면서 "그 정도라면 가족과 시간을 충분히 보내는, 내가 꿈꿨던 가정을 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씨가 다니는 회사는 직원 수가 10여명이어서 '주 52시간 근무' 규정이 2021년 7월부터 적용된다. 그는 내년 안에 결혼하고 적당히 신혼을 즐기다가 2021년 즈음에 아이를 낳는 것으로 대강의 '로드맵'도 구상해 뒀다.
그런데 근무시간 단축이 주는 희망만큼 걱정도 크다. 일단 과연 주 52시간이 '칼같이' 지켜질지, 회사가 받을 부담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비롯한 사원들에게 전가되지 않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한다.
이씨는 "근무시간이 줄어도 회사가 요구하는 업무량은 그대로일 것이고, 같은 일을 짧은 시간 안에 해내야 하니 업무 강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면서 "결국 꼭 현장에서 할 필요가 없는 서류업무 같은 것들은 집에 가져가 처리하게 되지 않을까"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우리 회사는 기본급보다는 수당 비중이 큰데, 근무시간이 줄어들면서 전체 임금도 쪼그라들까 봐 걱정"이라면서 "앞으로 사장님과 직원들이 천천히 의논을 해봐야겠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다수 중소기업 직장인들도 이씨와 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 인건비 상승이라는 일차적인 부담을 지게 될 회사가 갖은 편법을 동원해 법 개정의 취지를 무력화할지 모른다며 우려하고 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일자리 자체가 위협받을까 불안해하는 이들도 있다.
중소 제약회사에 12년째 다니는 김모(39)씨는 "영리한 자본은 늘 '꼼수'를 찾아내게 마련"이라면서 "어떻게든 인건비를 아끼고 일은 더 시키기 위해 수당을 깎거나 근로조건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등 각종 변칙이 난무할 것으로 본다. 결국, 우리만 힘들어지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 갓 입사했다는 이모(24)씨는 "생산직의 경우엔 근무시간이 줄면 자연스럽게 생산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인력을 더 고용하기에는 회사 부담이 큰 상황"이라면서 "회사가 인건비 줄이려고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소문이 도는데, 힘들게 찾은 일자리가 사라질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당분간 혼란이 있더라도 근로시간 단축이 옳은 방향인 만큼 정부가 흔들리지 말고 관련 법 규정을 적용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3년차 직장인 김모(27)씨는 "꼼수를 부리는 회사를 엄격하게 처벌하다 보면 법에 따라 근로시간을 지키는 게 상식이자 문화로 여겨지는 때가 올 것"이라면서 "근로시간 단축이 사용자 입장에서 부담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근로시간과 생산성이 꼭 비례하지만은 않는다는 점도 사용자들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ah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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