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시를 서울시에 맞춘다'…최고인민회의 결정으로 제도화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북한이 남북정상회담 사흘 만에 남북 정상이 구두로 합의한 남북한 표준시 통일을 전격적으로 이행하는 조처를 해 주목된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30일 '정령'을 통해 현재의 표준시인 '평양시간'을 한국의 표준시와 맞출 것이라며 내달 5일부터 적용한다고 공표함으로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합의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남북 표준시간 통일은 '판문점 선언'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 남북 정상 간 회동에서 나온 구두 합의다.
앞서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전날 브리핑에서 "북한의 표준시각을 서울의 표준시에 맞춰 통일하기로 했다"라며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이건 같은 표준시를 쓰던 우리 측이 바꾼 것이니 우리가 원래대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남측에 이 같은 구두합의가 공개된 이튿날 자신들이 취한 조치를 조선중앙통신 등 매체를 통해 공개했다.
중앙통신은 이날 "최고영도자 동지께서는 북과 남이 하나로 된다는 것은 그 어떤 추상적 의미가 아니라 바로 이렇게 서로 다르고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합치고 서로 맞추어나가는 과정이라고 하시면서 민족의 화해·단합의 첫 실행조치로 현재 조선반도에 존재하는 두 개의 시간을 통일하는 것부터 해나가실 결심을 피력하시었다"고 소개했다.
남북간 구두 합의도 소홀히 하지 않고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이는 남북한 정상이 전 세계에 공표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관한 판문점 선언 이행 의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정은 위원장은 정상회담 내내 남북간 합의가 다시는 휴짓조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정말 잃어버린 11년 세월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합의 이행을 하겠다는 열망을 표출한 바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약속하면 무조건 실행한다는, 언행의 일치를 보여주고 있다"며 "이는 한편으론 남측도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조치를 빠르게 이행해야 한다는 간접적 메시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북한이 남북한의 표준시간을 통일하는 조치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발표, 법적·제도적 절차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주목된다.
최고지도자의 지시가 곧 법으로 돼 있는 북한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로 일사불란하게 처리할 수도 있는 사안이지만, 국가운영 시스템과 절차를 통해 처리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정상국가로의 지향성을 다시 한 번 과시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실질적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과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함께 나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더욱이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는 데서 최고인민회의의 추인을 받아야 하는 사안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대의기관의 수장인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정상회담 공식 수행원에 포함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북한이 앞으로 최고인민회의 회의를 열어 판문점 선언의 합의 내용을 추인하는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우리 정부도 판문점 선언에 대해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비준에 이어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은 뒤 국민에게 공포되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북한은 1991년에도 중앙인민회의와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연합회의를 통해 남북기본합의서를 승인했지만, 남측은 국회 추인을 밟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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