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내 판사용 주택단지 반대 시위…쿠데타 후 최대 5천여 명 집회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태국 북부 치앙마이 시내에 있는 '타 패 게이트'(Tha Phae Gate) 앞에 29일 아침부터 시민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몰려들었다.
이날 모인 시민은 대략 5천여 명. 지난 2014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뒤 4년 동안 열린 거리 집회 참가자 규모 가운데 가장 많았다.
군부 정권이 5인 이상 모이는 정치집회를 엄격하게 금지한 태국에서 수천 명이 동시에 참여하는 집회가 열리는 것 자체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분명했다. 치앙마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해발 1천676m의 '도이 수텝'(수텝 산) 중턱을 깎아 비밀리에 지어진 판사와 법원 공무원용 주택단지를 허물라는 것이다.
태국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흰 코끼리의 전설이 깃든 도이 수텝은 태국 제2의 도시 치앙마이의 관광명소이자 유명 사원 '왓 프라탓 도이 수텝'이 있는 곳이다. 국립공원의 일부인 도이 수텝의 해발 1천m 아래쪽은 농산물 재배단지다.
이처럼 시민의 삶에 중요한 도이 수텝의 깊은 숲 속에 판사들과 법원 공무원들의 비밀스러운 주택이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된 것은 지난 2015년.
산악 오토바이를 즐기던 한 시민이 우연히 군 소유의 땅에 들어갔다가 숲이 훼손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국립공원·야생동식물보호청(DNP)에 신고한 것이다.
이후 주민 항의가 빗발치자 태국 육군 참모총장은 주택 건설 속도를 늦추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불과 1주일 여 만에 명령을 취소했다.
군 당국을 통한 압박이 통하지 않자 시민들은 주택을 허물고 숲을 복원하자는 취지로 온라인 서명운동을 통해 5만명이 넘는 청원단을 모으고 법원에 소송을 냈다.
급기야 군부 정권 최고지도자인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나서 사태 해결을 위한 관계 기관 간 협의를 약속했지만, 군 당국이 주택단지를 허물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집회를 주도한 테라싹 룹수완씨는 "도이 수텝은 772년 전 란나 왕국 시절부터 치앙마이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겨온 산이자 치앙마이의 보물"이라며 "치앙마이 시민은 도이 수텝을 지킬 권리가 있지만, 그동안 당국은 시민의 목소리에 단 한 번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법원과 당국은 주택 건설이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태국 국민 대다수는 거리로 나선 치앙마이 시민의 주장에 동조한다.
현지 설문조사 업체가 태국 국민 1천2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 응답자의 85.2%는 주택 건설이 숲과 생태계를 훼손하기 때문에 부적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이미 지어진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철거 찬성 의견을 가진 응답자 비율은 53.84%, 반대는 43.68%였다.
meola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