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내부고발 이야기 쓰고 싶었죠"

입력 2018-05-01 06:03  

편혜영 "내부고발 이야기 쓰고 싶었죠"
2년만에 장편소설 '죽은 자로 하여금' 출간
쇠락하는 지방병원 배경 자본주의 묵시록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딜레마에 빠진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했어요. 누군가를 고발하는 사람이 나중에 비난받는 처지가 되잖아요. 그런 상황이 펼쳐지는 내부고발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는데, 그러다 보니 개인이 몸담고 있는 조직이나 시스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죠."
신작 장편소설 '죽은 자로 하여금'(현대문학)을 펴낸 편혜영(46) 작가는 이 소설을 쓴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이 소설은 지방 소도시 한 병원을 배경으로 내부 비리를 고발한 직원이 오히려 따돌림을 당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등 고통을 겪는 이야기를 그렸다.
주인공 '무주'는 서울의 대형 종합병원에서 행정직원으로 수년간 일하다 쫓겨났다. 상사의 비리를 관행이란 이름으로 묵인하고 방조하다 그 몸통의 꼬리로 잘려나간 것이다. 그 상사의 주선으로 옮겨온 '이인시'라는 도시의 작은 종합병원에서 다시 구매팀 직원으로 일하게 된다. 이곳에서 무주에게 일을 가르쳐주는 선배 '이석'은 공고를 졸업하고 간호조무사를 거쳐 오래 전부터 이 병원에서 일한 터줏대감. 무주는 이석이 업무능력이 뛰어나고 좋은 사람이지만, 물품 구매시 리베이트를 얹는 비리의 핵심 인물로 의심한다. 이석이 교통사고로 거의 식물인간이 된 어린 아들을 장기간 돌봐왔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무주는 이석의 비리를 상부에 고발한다.
무주는 이전 직장에서 저지른 자신의 과오를 씻고, 곧 태어날 자신의 아이 앞에 떳떳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비리 고발을 감행하지만, 그로 인해 이석만 조용히 병원을 떠나고 비리는 그대로 남는다. 대신 돌아온 것은 다른 직원들의 노골적인 비난과 따돌림. 무주는 "무엇을 위해 이석을 고발할 작정을 한 건지, 어떤 공명심과 정의감에 홀린 건지 의아해"진다. (본문 95쪽)
소설은 이 두 인물과 함께 조직 안에서 살아남으려 악다구니 쓰며 경쟁하는 직원들 군상, 환자 생명에는 안중 없이 병상 채우기와 돈벌이에만 급급한 병원 운영자들, 한때 조선소 호황으로 흥했으나 조선업 쇠락과 함께 불이 꺼진 도시의 절망적인 풍경을 생생하게 그린다.
문학평론가 황종연은 "편혜영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아니라 병원 경영 관리에 초점을 맞춰 병원의 세계를 그리면서 인도주의의 미담 대신에 자본주의의 묵시록을 제시한다"고 해설했다.
이 소설은 결국 거대한 신자유주의 시스템 안에서 톱니바퀴처럼 끼어 돌아가면서 탈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는 힘없는 현대인의 현실을 암울하게 비춘다.
"성실한 노동자이고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 사람들, 도덕적으로 '옳다 나쁘다'는 판단보다 자기변명을 할 수 있는 인물들을 그리고 싶었어요. 결국 (자기 선택의 결과에) 어리둥절해 하면서 '뭐가 잘못된 거지?' 스스로 반문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그리면서 썼죠. 그들이 계속 그런 자기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흥미로웠어요. 직원들은 병원이란 시스템 안에서, 병원은 다시 이 도시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데, 각자의 선택이 조직과 시스템 내에서 겪는 아이러니는 언제나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하다 보니 그 배경이 커지게 된 것 같아요."



이 소설이 병원을 배경으로 하면서 생명 존중과 희망을 얘기하는 기존 의학드라마 줄거리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도 흥미롭다.
작가는 "외부에는 잘 공개가 안 되고 외부인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공간으로 병원을 떠올리게 됐고, 거기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생각했다"며 "의사들 세계는 워낙 잘 모르는 분야여서 병원 행정쪽 업무 담당 직원들로 이야기를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주로 병원 행정에 관한 책을 많이 참고하고 관련 종사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고.
끝까지 희망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결말에 관해 작가는 "시스템 모순은 계속 되풀이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소설은 작가가 작년 7월 월간 '현대문학'에 발표한 중편(원고지 300여 매)에 200여 매를 더해 장편으로 발전시킨 작품이다. 2016년 3월 말 펴낸 네 번째 장편 '홀'에 이어 2년 만에 선보이는 다섯 번째 장편. 그간 발표한 단편들을 묶은 소설집도 올해 출간을 논의하다가 내년으로 미뤘다.
성실한 작가라는 평에 그는 "칼럼이나 에세이 같은 글은 전혀 안 쓰니까 소설만 꾸준히 쓰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2000년 등단해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휩쓴 그는 점점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독자층을 넓히고 있다. 장편 '재와 빨강'이 2012년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된 데 이어 2016년에는 이 작품과 '홀'이 미국에서 잇따라 번역 출간됐다. 작년에는 '재와 빨강'이 폴란드의 대표적 문학 온라인 커뮤니티 '그라니차'에서 성인도서 부문 '올해의 책'으로 뽑히기도 했다.
"제가 처음부터 독자가 많았던 작가는 아니고, 지금도 그렇게 많진 않아요(웃음). 그저 꾸준히 작품을 낼 수 있고 독자분들이 계속 따라 읽어주면 감사한 마음이 크죠. 해외에 번역, 출간된 건 운이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우리 문학이 해외에 번역되는 것은 이제 막 물결을 타는 시기잖아요. 그런 물결이 누적되면 후배 작가들에겐 직접적으로 어떤 성과를 거두는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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