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병원 원목 헌틀리 목사 사택…20여명 시민 피난처이기도 했던 역사의 현장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광주 근대역사문화 마을인 양림동에는 5·18 민주화운동 역사현장으로 기억해야 할 벽돌집 한 채가 남아있다.
호랑가시나무에서 수피아여고 담장을 따라 5분가량 걸어가면 나오는 이 집은 광주기독병원 원목(院牧)으로 재직한 찰스 베츠 헌틀리(한국명 허철선) 목사 가족이 머물렀던 옛 선교사 사택이다.
1980년 5월 당시 광주 참상을 취재하고자 모여든 외신기자는 헌틀리 목사 사택을 꼭 한 번은 거쳐 갔다.
영화 '택시운전사' 속 독일 기자의 실존인물 위르겐 힌츠페터도 항쟁 진실을 목격하고 영어와 독일어에 능통한 헌틀리 목사에게서 이야기를 듣고자 이 집을 다녀갔다.
1일 연합뉴스가 방문한 옛 헌틀리 목사 사택은 선교사 정신을 계승하고 예술창작이 이뤄지는 문화공간 'The 1904'로 탈바꿈해 있었다.
The 1904를 설립한 홍인화 전 광주시의원은 1985년 헌틀리 목사가 미국으로 떠난 뒤 30여년간 방치됐던 사택을 3년 전 호남신학대학교로부터 빌려 단장했다.
차고를 개조한 입구에 들어서니 헌틀리 목사 부부가 창문 틈으로 새어드는 햇빛을 가려 필름을 현상했던 암실 터가 원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참혹한 주검이 된 희생자의 모습과 도심 곳곳에서 목격한 계엄군의 만행을 담은 필름은 헌틀리 목사 사택을 찾은 해외 선교사와 외신기자 손을 거쳐 세계로 전파됐다.
학자이기도 했던 헌틀리 목사와 유수 언론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아내 마르다 헌틀리는 자신들이 목격한 광주항쟁을 글로 옮겨 필름과 함께 전했다.
헌틀리 목사는 훗날 펴낸 회고록에서 "거리에서는 계엄군이 시민들을 때리고 여러 사람을 체포했다. 일요일인 것을 감안했을 때 대다수 시민은 단지 교회 등에 가고 있었을 뿐인데 영문도 모른 채 폭행을 당한 것이었다. 5월 18일은 매우 슬픈 날로 한국사에 기록될 것이다"라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지하 1층에 지상 1층 규모로 다락방까지 갖춘 헌틀리 사택은 고립된 도시 광주에서 몇 곳 되지 않은 피난처 구실을 하며 20여명 시민을 넉넉하게 품어주기도 했다.
곳곳에서 만행을 저지르는 계엄군으로부터 안전한 장소를 찾아 다양한 군상이 헌틀리 목사 집을 찾아왔다.
헌틀리 목사는 시민 연행에 나선 계엄군을 돌려보낸 일화를 "우리는 겁먹은 시민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그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타격을 입은 사항 중 하나가 바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1980년 5월 광주의 기억을 간직한 그는 지난해 6월 26일 81세를 일기로 눈을 감으며 '광주에 가고 싶다. 광주에 묻히고 싶다'라는 말을 가족에게 남겼다.
고인의 가족은 이러한 유지를 받들어 이달 화장한 유골 일부를 광주로 옮겨올 계획이다.
헌틀리 목사 발자취가 담긴 기록물은 이날부터 8일까지 양림미술관에서, 9일부터 31일까지 사택 야외에 전시된다.
사택을 돌보며 전시를 마련한 홍인화 The 1904 대표는 "헌틀리 목사와 오월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라며 "광주의 진실을 미국과 독일, 세계로 알린 그의 삶과 역사 현장인 사택이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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