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푼 번다고' 어버이날 찾아올 손주들 용돈 쥐여주려다 참변

입력 2018-05-02 13:35   수정 2018-05-0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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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푼 번다고' 어버이날 찾아올 손주들 용돈 쥐여주려다 참변
가정의 달 찾아온 비극에 영암 버스사고 피해 마을 온 종일 침통


(나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엄마는 절대로 일 나가면 안 돼. 종일 일 해서 얼마나 번다고. 우리가 용돈 더 챙겨드릴게요."
2일 전남 나주시 반남면에 사는 김모(79) 할머니는 외지로 떠난 자식들에게서 잇따라 전화를 받았다.
김 할머니는 전날 영암에서 발생한 미니버스 추락사고 소식이 뉴스를 통해 전해진 뒤로 아들, 딸, 손주들 전화가 계속해서 걸려온다고 말했다.
"어린이날 그냥 넘어가기도 서운하고. 자식들이 어버이날 손주들 데리고 오면 용돈이라도 쥐여주려고 쌈짓돈 벌러 나가는 거지"
김 할머니는 본인도 평소 사고 버스를 타고 밭일하러 다녔다고 설명하며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이웃들을 떠올렸다.
이번 사고로 반남면 주민 5명이 목숨을 잃고 8명이 다쳤다.
반남면 바로 지척인 영암군 시종면 주민 3명도 숨을 거뒀다.

마을회관과 상점 앞 평상에 모여앉은 이웃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오전 나절을 보냈다.
사고로 동갑내기 친구를 떠나보낸 이모(84) 할머니는 "젊어서 둘 다 반남면으로 시집와서 의지하며 지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노인정을 겸한 마을회관 청소를 하느라 전날 사고를 피한 최모(85) 할머니는 "나도 그 버스 타고 일 나갈 뻔했다"라며 "광주 사는 조카가 전화로 밭일 다니지 말라고 하더라"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객지에서 조바심내는 자식들 심정과 달리 이날도 반남면에서는 노인들 몇 명이 삼삼오오 모여 승합차를 타고 일당벌이 밭일에 나섰다.
반남면 한 마을에서 이장을 지낸 전모(60)씨는 "농촌은 도시처럼 소일거리 없다"라며 "명절에 손주들 용돈 줄 생각에 어르신들은 일을 나간다"라고 마을 사정을 설명했다.
전씨는 "고령화가 심각해서 70대는 노인 취급도 받지 못하는 게 농촌 실정"이라며 "고단했던 시절을 살아오신 분들이라 자제분들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를 않는다"라고 안타까워했다.
h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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