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배우 유해진은 커다란 백팩을 메고 등산 모자를 쓴 채 등장했다. 모자를 벗자 땀에 젖은 머리가 헝클어져 이마로 흘러내렸다.
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마치 등산길에서 마주친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고 꾸밈이 없었다. 운동 삼아 수도권 안에 있는 지역은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그는 이날도 "집에서부터 걸어왔다"며 활짝 웃었다.
올해 한국 나이로 쉰인 그는 이달 9일 개봉하는 영화 '레슬러'에서 쉽지 않은 도전을 했다. 그가 맡은 역은 전직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 귀보. 지금은 체육관을 홀로 운영하며 레슬러 유망주 아들 성웅(김민재 분)을 뒷바라지하는 데 전념한다.
'전직'인 덕에 직접 레슬링 하는 장면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짧은 촬영을 위해 구슬땀을 흘려야 했다.
"요즘은 섣불리 흉내 내면 욕을 먹기 때문에 여름에 체육대학에서 연습했습니다. 나이 탓인지 정말 힘들었습니다. 연기생활 하면서 축적된 부상이 이제 슬슬 나타날 나이죠. 집에서 음식을 식탁에 올려놓다가 허리를 삐끗해 '미스터아이'를 찍은 적도 있었다니까요."
그는 '미스터아이'는 '엠아르아이(MRI·자기공명영상)'라며 혼자 웃었다. "이거 아재개그 아니고, 진짜 개그인데…하하"
요즘 체력적인 문제보다 그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심적 부담감이다. 주로 감초 역할을 맡은 그는 영화 '럭키'(2016·700만명) 흥행으로 '럭키가이'라 불리며 주연급 배우로 올라섰다. '레슬러'도 사실상 유해진이 웃음과 감동을 책임지는 영화다.
"갈수록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저를 보고 시나리오를 건네고, 투자하는 분도 많은데, 거기에 대해 제가 앞장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죠." 연기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유해진은 유쾌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웃픈' 소시민 연기가 특기다. "(비슷한 이미지에 관객의) 피로도가 쌓일까 항상 고민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매번 새로울 수는 없죠. 현장에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극중 귀보는 꼬마 때부터 봐온 아들의 소꿉친구 가영(이성경)으로부터 일방적인 구애를 받는다. 이 일로 귀보는 아들과도 사이가 틀어지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자아를 찾는다.
'딸뻘 되는 여성과 러브라인은 너무 과한 설정이 아니냐'는 지적에 유해진은 "어렸을 때 누구나 선생님 또는 교회 오빠를 좋아한 경험이 있지 않으냐"며 "크게 보면 귀보의 아들 사랑, 귀보 엄마의 귀보 사랑 등 모두 짝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성경과 '뽀뽀신'을 언급하자 머리를 긁적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성경 씨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유해진은 김민재와 실제 부자 같은 호흡을 보여준다. 그는 "외모로 보면 아빠와 아들 조합이 맞는 것인가 많이 고민했다"면서 "하지만, 민재는 정말 믿음직스럽고, 저를 잘 따라서 실제 아들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인 옛 모습을 떠올렸다. "저는 못된 아들이었습니다. 엄마 가슴에 못 박는 말을 많이 했죠. 제가 연극을 하는 것을 반대하신 점도 이해가 안 됐죠. 그런데 엄마는 결국 제가 잘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유해진은 "자식은 없지만, 이제 나이가 차서 그런지 부모 입장에서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며 "예전에 철없이 술 먹고 까불 때와는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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