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자유민주주의→민주주의' 헌법 논쟁으로 번져

입력 2018-05-03 18:26  

역사교과서 '자유민주주의→민주주의' 헌법 논쟁으로 번져
"민주주의가 더 상위 개념" vs "인민민주주의도 허용하느냐"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두고 1948년 유엔결의 해석 논란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시안이 공개되자 교육계 외에 정치권과 법학계 등 다른 부문에서도 논쟁이 벌어지는 등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용어의 사용 문제,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표현의 존치 여부 등이 논점이다.
앞서서는 올해 신학기부터 사용될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유지돼 진보진영 반발을 샀다. 교과서 집필기준상 자유민주주의 표현은 2011년 교육과정 개정 때 처음 사용됐다.
3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2일 공개된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시안'에는 자유민주주의 대신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또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표현도 빠졌다.
보수진영은 즉각 반발했다.
자유한국당은 논평에서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이라면서 "폐기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안검사 출신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내용이 참 황당하다. 현재의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겠다고 한다. 그러면 사회주의 혁명세력이 주장하는 인민민주주의도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냐"면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유지해야 한다는 쪽은 헌법을 이유로 든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대변인은 "헌법에 자유민주주의가 명시된 만큼 이를 교과서에 싣는 것은 당연하며 사회·인민민주주의와 구분도 필요하다"면서 "자유를 빼는 문제는 불필요한 논쟁·갈등을 부를 우려가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이 전문과 제4조에 두 차례 등장한다.
또 정당해산 관련 조항인 8조 4항에는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이 나온다.
헌법의 기본원리가 민주주의인지 자유민주주의인지에 대해서는 헌법학계에서도 여러 의견이 나온다.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하위개념으로 보는 입장이 있고, 그렇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자유'의 의미를 넓게 볼 것인지 좁게 볼 것인지의 차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자유'를 넣어야 한다는 입장은 이 용어를 빼면 '좌편향'이 된다고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헌법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강조하므로 '자유'를 빼는 건 곤란하다는 취지다.
반면 이를 빼도 된다는 입장은 '자유'라는 표현이 시장경제체제에서 '시장의 자유'를 뜻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해석하는 쪽이다. 즉 자유라는 표현이 빠진 민주주의는 교육·노동 등 사회권과 인권 등의 측면에서 정부의 개입·역할을 상대적으로 강조하는 것이지 이게 곧 인민민주주의 허용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는 취지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유민주주의는 크게 보면 민주주의의 한 내용"이라면서 "(자유 없이) 민주주의라고만 표현했다고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나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를 인정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헌법은 자유민주주의를 핵심으로 하면서 생존권적 기본권이나 경제에 대한 규제와 조정 등 사회민주주의 요소들도 인정한다"면서 "헌법이 근대적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한 형태의 자유민주주의만 허용한다는 견해는 학계에서 일반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정재황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1987년 개헌 때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앞에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라는 말이 붙었는데 이 뜻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가 자유민주주의뿐이라는 일각의 주장에는 반대한다"면서 "용어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역점을 둬야 할 것은 헌법에 내포된 전체 가치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달리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민주주의 이념에 자유라는 것이 당연히 포함된다는 주장은 원칙적으로 맞다"라면서도 "다만 그런데도 헌법이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해온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은 북한을 의식한 것"이라며 "우리 민주주의와 북한의 인민민주주의가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통령 발의 개헌안에도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이 들어갔는데 교육부가 이를 바꿔 혼란을 초래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번 집필기준 시안에서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표현이 빠진 것에 대해서는 '영어해석'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시안 연구진은 1948년 12월 유엔총회결의 제195호에 대한민국이 '유엔한국임시위원단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 수립된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설명돼 있고 남북한이 1991년 유엔에 동시 가입했으므로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표현은 적절히 않다고 밝혔다.
보수진영은 유엔총회결의 말미 'that is 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라는 구절에서 'such government'가 앞서 나오는 'lawful'(합법적인)을 받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진보진영은 결의 중 다른 구절(that part of Korea)을 바탕으로 선거가 가능한 남한지역에서 설립된 합법정부라고 해석한다.
jylee2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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