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을 묘비로 쓴 쇼스타코비치

입력 2018-05-04 13:32  

교향곡을 묘비로 쓴 쇼스타코비치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내 교향곡은 대부분이 묘비다."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1906~1975)가 죽기 직전 남긴 말이다.
실제 쇼스코비치가 남긴 교향곡들에는 피 냄새가 짙다. 전쟁이나 혁명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는 서양 역사상 가장 길고 파괴적인 포위전 중 하나로 꼽히는 '레닌그라드 포위전' 속에서 탄생한 대곡이다.
1941년 히틀러 군대가 쇼스타코비치가 나고 자란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의 당시 명칭)를 포위해 약 2년 반 동안 시민이 100만명 넘게 사망했다. 당시 나치와 소비에트 독재로부터 이중 압박을 받던 쇼스타코비치가 레닌그라드 시민들을 고무하고 추모하기 위해 쓴 작품이 이것이다.
신간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돌베개 펴냄)은 이 교향곡 7번 탄생에 초점을 맞춘 쇼스타코비치 평전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레닌그라드 시민에 관한 역사서이자 음악의 힘을 예찬하는 예술서이기도 하다.
쇼스타코비치가 어떻게 레닌그라드에서 폭격과 싸우며 이 곡을 작곡하기 시작했고, 어떻게 피난지 쿠이비셰프에서 작곡을 끝냈는지, 소비에트 당국이 왜 이 곡을 그토록 서방으로 보내고 싶어했는지, 이 곡이 폐허가 된 레닌그라드에서 어떻게 기적처럼 연주될 수 있었는지 등이 생생하게 서술된다.
특히 이 교향곡 악보가 30m 길이·2천750페이지 마이크로필름에 담겨 중동과 북아프리카 사막을 넘어 미국에 전달된 과정, 1942년 8월 9일 절반 이상이 죽고 뿔뿔이 흩어진 레닌그라드 라디오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되는 장면 등이 매력적으로 펼쳐진다.
"자기 몸을 가눌 수 있는 음악가들은 모두 1942년 3월 30일 첫 리허설에 나타났다. 열다섯 명밖에 되지 않았다. 다들 굶주림에 허덕였고 검댕이 묻어 새까맸다. 라디오 스튜디오는 얼음 동굴처럼 싸늘했다.(…) 첫 리허설은 세 시간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들은 15분을 하고 끝냈다."(435~436쪽)
"전 세계 수많은 도시에서 연주되었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이 마침내 레닌그라드에서도 울려 퍼졌다. 자신감 있는 개시부 주제가 성큼성큼 나아갔다. 그날의 연주는 공연장 안에서만 들린 것이 아니었다. 확성기를 통해 도시 거리에, 운하 너머로, 모래주머니를 쌓아놓은 궁전 멀리까지 전해졌다.(…) 레닌그라드 전체가 그날 밤 음악을 들었다."(446쪽)
소설가이자 고전음악 칼럼니스트인 M.T. 앤더슨의 해박한 지식과 방대한 조사가 눈길을 끈다.
쇼스타코비치와 그 가족들, 당대의 일상, 참혹한 전장의 모습 등을 생생히 보여주는 도판 130컷도 수록됐다.
장호연 옮김. 546쪽. 2만2천원.
sj997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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