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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과 동의어인 판문점에서 평화를 향해 중요한 출발이 이뤄졌다"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김연철 신임 통일연구원장은 "종전선언을 어떻게 하느냐, 평화협정을 어떻게 맺느냐는 '법적인 평화'다. 그만큼 중요한 것은 평화를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냐"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3일 서울 서초구 통일연구원에서 한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향후 남북관계에서의 '사실상의 평화' 정착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남북관계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전문가로 꼽히는 그는 지난달 13일 통일연구원 신임 원장에 취임했다.
다음은 김 원장과의 문답.
--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참석했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인상은 어떠했나. 만찬에서 느낀 북한의 태도는.
▲ 우리 쪽 참석자들이 헤드테이블에 가서 인사하고 술을 권하면 항상 일어서서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상대에 대한 배려 같은 것이 엿보였다.
만찬장에서 두 정상이 가장 많이 강조한 것은 애로와 난관이 있을 수 있지만 자주 만나 대화로 풀어보자는 것이었다. 그것이 남북 간 불신과 신뢰 문제에 대한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신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 북한은 최근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핵무력과 경제건설의 병진노선을 종료하고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한다는 노선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북한이 정말 전략적 방향을 선회한 것인지 여전히 의구심도 있다.
▲ 김정은 체제는 과거와 세 가지 차원에서 다르다. 첫 번째는 국정운영의 정상화다.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것은 예측 가능성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경제개혁이다. 농업 분야에서 포전담당제의 성과나 기업 분야에서의 자율과 분권화 등은 중요하다. 휴대전화 사용자 500만 명도 작지 않은 의미다. 세 번째로 핵무기가 아니라 경제를 선택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경제 문제에 대한 정책적 우선순위가 과거와 다를 수 있다.
이는 최근의 변화가 아니다. 김정은 체제에 들어오면서 시작된 큰 변화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김정은 체제의 6∼7년간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 이번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 의의를 말해달라.
▲ 가장 중요한 것은 판문점이라는 공간의 의미다. 탄생 자체가 휴전협정의 결과물인 판문점에서 벌어진 하루가 법·제도적인 측면보다 훨씬 중요하다. 4월 27일 자체가 '전쟁이 끝났다'는 일종의 상징적 행위를 전 세계에 보여준 것 같다. 냉전과 동의어인 판문점에서 평화를 향한 중요한 출발이 이뤄진 것이다.
-- 지난 두 차례 정상회담과 비교해 판문점 선언에서 가장 진전된 부분은 뭔가.
▲ 두 정상 모두 이행의 중요성을 굉장히 강조했다. 합의한 많은 내용이 과거와 비슷할 수 있지만, 이행을 신속히 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점을 다르게 봐야 한다.
선언문은 남북관계와 평화정착, 비핵화의 순서로 이뤄져 있는데 여기에는 핵 문제를 바라보는 일종의 철학이 담겨 있다. 핵 문제는 단순히 무기의 문제가 아니고 관계의 문제다. 남북관계의 성격이 달라지고 평화정착이 이뤄지면 비핵화의 속도도 빨라질 수밖에 없다. 약속은 그 약속을 할 당시의 관계를 반영한다. 약속 이후 이행의 속도와 규모를 지켜본다면 합의문 문구의 생명력을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선언에 포함된 남북관계 진전 장치와 군사적 긴장완화 방안은 앞으로 평화정착에 어떤 역할을 할까.
▲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실상의 평화'다. 종전선언을 어떻게 하느냐, 평화협정을 어떻게 맺느냐는 '법적인 평화'다. 그만큼 중요한 것은 평화를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냐다. 적대 행위의 중단과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화에서부터 시작되는 군사적 신뢰 구축의 전반적인 내용이 중요하고, 결국 그것이 이뤄지면 평화협정의 수준이 달라진다.
-- 판문점 선언의 비핵화 조항을 어떻게 평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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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한 비핵화'는 미국, 한국,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가 똑같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확실하게 밝힌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비핵화를 할 것이냐의 문제는 북미정상회담에서 조금 더 진전된 형태의 포괄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 끝나면 실무회담이 연달아 열려야 하는데, 실무회담은 굉장히 복잡할 것이다.
-- 가장 큰 난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 과거와는 북한의 핵 개발 수준이 다르므로 신고의 범위나 분야가 복잡해지고 커졌다. 사찰과 검증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불신이다. 결국, 신고가 정확하지 않은 부분 등인데 이에 대해서는 북한이 초기부터 일종의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도 상응 조치들이 중요하다.
일종의 '되돌릴 수 없는 수준'에 신속하게 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비핵화, 평화정착, 북미관계 모두 마찬가지다. 되돌릴 수 없는 수준을 최대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에 도달하는 것이 과제다. 이를 넘어서면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목표까지 갈 수 있다.
--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은 궁극적으로 무엇일까.
▲ 북한이 전통적으로 원하는 체제보장은 (북미 간) 관계 정상화와 평화체제가 핵심적인 요소다. 한 마디로 관계가 달라지는 것이다. 적대적 관계가 일종의 공존 혹은 협력관계로 바뀌는 것이다.
이는 경제협력이라는 부산물과 분리돼 있지 않다. 북한은 구매력 수준이 낮고 인구와 시장도 작을 수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경제적 가치가 있다. 바로 대륙과 해양의 '다리'라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리로서 북한의 경제적 가치를 인식하면 비핵화의 속도도 훨씬 빨라질 수 있지 않을까.
-- 북미 관계 정상화 이후 주한미군의 필요성 문제가 최근 논란인데.
▲ 평화협정과 주한미군은 별개다. 평화협정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기 때문에 주한미군이 가진 기능은 상당 기간 유지될 것으로 생각한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계가 안 좋을 때 북한이 선전 차원에서 하는 주장과 협상장에 나와서 하는 이야기는 다르다. 주한미군 철수 같은 주장은 선전(차원의) 주장이라고 본다.
-- 판문점 선언은 연내 종전선언을 거쳐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추진을 명시했는데.
▲ 예를 들어 판문점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당연히 남북미 3자가 종전선언을 할 기회다. 그렇지 않으면 별도로 종전선언을 해야 하니 그때는 중국이 참여할 수도 있다. 북미정상회담의 장소나 방식을 염두에 두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그것에 대해 중국이 섭섭할 필요는 없다. 평화협정은 결국에는 4자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통해 한반도의 냉전 구조를 해체하는 전인미답의 길에 들어섰다.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인디언들은 막 뛰다가도 선다고 한다. 혹시 영혼이 쫓아오지 못할까 봐서다. '톱다운'(Top-down) 방식은 현재의 오랜 냉전체제를 생각했을 때 굉장히 효과적이다. 그렇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하려면 실무회담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가지고 해야 한다. 그러니 정상회담과 실무회담이 너무 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 국책 연구기관으로서 통일연구원은 어떤 역할을 하고자 하나.
▲ 현실의 속도감을 연구가 따라잡지 못하는 격차가 발생하고 있는데 국책연구기관에서 이런 부분을 해설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과거의 관성에 따라서 보는 방식을 극복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소통을 해야 한다. 내부적으로 토론을 활성화하고 외부 연구자들과의 네트워크에도 활짝 문을 열 생각이다.
-- 조국통일연구원 등 북한 연구기관과 교류할 생각은. 방북 계획은.
▲ 앞으로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남북 간 연구 차원의 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찬장에서 북한 관계자들한테 제안했고 분위기가 워낙 좋았으니 그렇게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혹시 방북 기회가 주어진다면 북한의 해당하는 연구기관과 공동연구를 할 계획을 추진해볼 생각이다.
kimhyo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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