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계좌 100일] 뒷짐 진 당국에 중소거래소 가상계좌 발급은 '0'

입력 2018-05-06 07:01  

[실명계좌 100일] 뒷짐 진 당국에 중소거래소 가상계좌 발급은 '0'
국민·하나은행 시스템 갖추고도 '올스톱'…해외 거래소는 국내 속속 진출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김경윤 기자 = 실명확인 가상계좌로만 가상화폐를 거래할 수 있도록 한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가 시행된 지 100일을 앞두고 있지만, 중소거래소에는 여전히 가상계좌가 단 한 좌도 발급되지 않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실명확인 시스템을 완비하고도 금융 당국의 눈치를 보면서 가상계좌 발급이 사실상 '올 스톱' 상태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6일 가상화폐 거래소 업계에 따르면 현재 시중은행으로부터 가상계좌를 받을 수 있는 거래소는 이른바 '빅4'로 꼽히는 빗썸, 업비트, 코인원, 코빗뿐이다.
빗썸과 코인원은 NH농협은행, 코빗은 신한은행, 업비트는 기업은행으로부터 가상계좌를 받고 있다.
이들 거래소는 실명제 시행 전에도 가상계좌를 발급받았으며 지난 1월 30일 실명제 시행을 기해 이를 실명확인 계좌로 전환해왔다.
빗썸, 코인원, 코빗은 순차적으로 신규 회원의 가상계좌도 발급받았지만, 업비트는 신규 가상계좌 발급이 여전히 막혀있다.
이보다 더 애타는 것은 중소거래소들이다.
현재 코인네스트, 고팍스 등 중소거래소는 법인계좌나 C2C(가상화폐 거래)가 아니면 입금이 어려운 상황이다.

실명제 시행 이후에도 가상계좌 발급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는 뜨뜻미지근한 당국의 태도가 꼽힌다.
지난 1월 당국은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 일정을 발표하면서 은행이 자율적으로 판단할 문제지만, 신규 계좌 개설시 당국의 집중 점검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신규 고객을 받는 것은 은행의 자율적 판단"이라면서도 "은행들은 철저히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은행이 선뜻 새로운 거래소에 가상계좌를 내줬다가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은 은행이 몽땅 져야 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현재 실명 가상계좌를 받은 거래소 4곳도 모두 실명제 이전부터 가상계좌를 받았던 곳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나마도 신한은행은 해킹사고 이후 방송통신위원회의 권고사항을 아직 이행하지 않았다며 빗썸에 가상계좌를 내주지 않고 있다.
이후 당국이 신규 가상계좌 발급을 막은 적이 없다고 나섰으나 시중은행은 더 분명한 신호가 나올 때까지 몸을 사리는 형국이다.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은 실명확인 계좌 발급 시스템은 모두 갖췄지만, 가상화폐 거래소에 가상계좌를 내주지 않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위험부담이 크다"며 "(당국에) 가상발급 계좌에 부정적인 기류가 있는데 누가 선뜻 나서겠느냐"고 설명했다.

한 중소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도 "정치적인 이유로 요건은 다 갖추고도 가상계좌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은행들이 눈치만 보면서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소거래소 중에서는 가상계좌를 받지 못해 문을 닫은 곳도 있다. 코인피아는 지난 2월 가상계좌를 받지 못해 거래를 중단했다.
이 와중에 국내에서 새로이 서비스를 시작하는 해외 거래소가 늘어나고 있어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후오비 코리아와 오케이엑스, 지닉스 등 중국 가상화폐 거래소가 국내 시장에 속속 발을 들였다.
또 다른 거래소 관계자는 "무언의 규제만 있고 뚜렷한 기준이 없는 사이에 해외 거래소가 밀고 들어오고 있다"며 "(가상화폐) 법제화를 하고 문제가 있는 거래소는 빨리 솎아내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heev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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